김백상 윤살구 김혜영 박선미 황성식 저,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2021', 2021
최초 작성일 2021.05.21
고수(高手): 바둑이나 장기 따위에서 수가 높음. 어떤 분야나 집단에서 기술이나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
문득 만우의 팔뚝에서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꿈틀댔다. 온몸을 뒤덮은 비늘은 갑옷처럼 탄탄했고, 커다란 눈알엔 생기가 넘쳤다. 두툼한 주둥이는 무엇이든 집어삼킬 것 같았다. 잠시 몸을 뒤틀던 잉어는 허물을 빠져나오듯 만우의 팔뚝을 벗어났다. 그리고 곧 빗물이 흘러가는 거리로 풍덩, 뛰어들었다. 하염없이 비가 쏟아졌다.
- 조업밀집구역, 김백상 作
약 두 달간의 바쁜 일정을 앞두고 남은 연차의 절반을 사용해버렸다. 일정 동안 어차피 휴가는 쌓일 테니까 미리 쉬어두겠다는 마인드. 그나마도 하필 연차 기간에 직장동료들과의 약속이 미리 잡혀있었던 터라, 마음먹고 멀리 여행을 갈 수도 없었기에 미리 사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책은 오프라인 서점에 들러 책의 재질, 디자인, 첫 페이지의 맛을 반드시 느껴 보고 구매해야 한다는 나름의 똥고집 때문에 집과 멀지 않은 곳의 백화점에 입점해있는 교보문고에 달에 한 번은 들리는데 그때 사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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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다양한 분야의 글-글자로 구성되어 있는 모든 문장은 글이라고 본다. 물론 최소한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정도의 것.-을 읽어왔음에도 평가해볼 생각도 없었을뿐더러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글이 재밌다 재미없다 혹은 잘썼다 못썼다로 인식할 뿐이었다. 그나마도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그저 나만의 기준이었던 셈이다. 여차저차 어느 정도로 글을 써야 공모전에 수상될 수 있는 건지 나름의 궁금증도 있었겠거니와 코팅 처리가 잘 된 재질로 분홍분홍 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을 하고 있어 예민한 놈의 기준을 통과하게 된 이 책을 입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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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총 다섯 작가님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데, 김백상 작가님의 조업밀집구역, 윤살구 작가님의 바다에서 온 사람, 김혜영 작가님의 토막, 박선미 작가님의 귀촌 가족, 황성식 작가님의 알프레드 고양이, 로 구성되어 있다. 글의 세계를 지나치게 얕봤던 것일까, 첫 작품부터 압도적인 필력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이렇게 재밌다고?'
이야기의 흐름에 '넘사벽'을, 글의 표현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또한 단편이기 때문에 그 내용의 속도감이 더해져 흡입력만큼은 최근에 읽었던 어떤 글보다도 더 진했다고 확신한다. 아래는 각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간략하게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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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업밀집구역 - 김백상 作
- 유쾌한 필력으로 읽는 내내 현웃(현실 웃음)을 하게 만든 작품, 가족적인 스토리가 더해져 전체적인 구성이 좋았다.
2. 바다에서 온 사람 - 윤살구 作
- 차분해질 수도 있는 가족 이야기에 참신한 소재를 활용하여 내용의 신비감을 더해 지루하지 않은 따뜻함을 주었다.
3. 토막 - 김혜영 作
- 스릴러적인 표현으로 내용의 속도감을 더해 문장의 흡입력을 극대화시킨 작품. 마지막의 떡밥 회수는 정말..!
4. 귀촌 가족 - 박선미 作
- 비슷한 내용의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예상했던 것 과는 또 다른 아주 시원한 결말로 속이 뻥 뚫렸던 작품.
5. 알프레드의 고양이 - 황성식 作
- 고양이를 좋아하는 탓에 눈길이 갔던 작품. 현실성과 개연성, 스토리의 탄탄함이 가장 돋보였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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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도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는 뉴런 속 깊숙이 잠자고 있던 명언을 다시 한번 일깨우며 스스로를 반성했다. 글쓰기 세계도 그렇지만 현실 세계에서도 어째서인지 최근에 스스로가 지나치게 당당하고 그 정도가 지나쳐 뻔뻔해졌다는 느낌이 들곤 했기 때문이다. 겸손해야지 하면서도 순간적인 예민함으로 주변인들에게 좋지 않은 기운을 준 것 같아 미안해지는 밤이다. 이토록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작품들과 책에 감사하며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겸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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