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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7

대만에서 가방 잃어버린 이야기(4) - 가방에 지혜가 담겨오다 대만 2일 차. 타이중 근처 루강에 있는 공업단지에서 종일 업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엔 보랏빛과 주황빛이 절묘하게 섞인 아름다운 노을이 펼쳐지고 있었다. 개와 늑대의 시간. 이 말은 양치기들이 쓰던 말로, 노을이 지는 시간대가 언덕 너머에서 다가오는 동물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이 어려운 시간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택시 창 밖의 풍경에 시선을 던지고 있던 나는 왜 갑자기 이 말이 떠올랐던 걸까? 낮도 밤도 아닌 애매모호한 시간. 연초부터 천방지축 좌충우돌 실수를 연발하는 나. 마치 이러지도 저러지도, 막 앞으로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뒤쳐지지도 않는 애매한 나의 상황을 대변해주기라도 하려는 것이었을까. 살다 보면 가끔 직관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생각 또는 단어들이 귀중한 통찰력을 가져.. 2024. 1. 21.
대만에서 가방 잃어버린 이야기(3) - 꼬인 실타래 사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기차를 탈 일 없이 인천공항에서 타이중 공항으로 직접 왔으면 편했을 일이었다. 그런데 세상 일이 그렇게 계획대로 흘러가던가. 출장을 계획하기 바로 직전! MBC '나 혼자 산다'에서 타이중편이 방영되는 바람에 직항 표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나 뭐라나.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우리는 타오위안 공항을 들러 기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동료와 이야기 꽃이 한창 일 때 창 밖 멀리 보이는 커다란 산을 중심으로 물이 가득한 논이 딸린 마을 몇 개를 지나자 평지에 세워진 회백색 도시가 나타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과천과 분당 그 중간 어디쯤 같았다. 대만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타이중이었다. 타이중역은 생각보다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건축물 규모만 봤을 때는 광명역과 견줄만했지만,.. 2024. 1. 21.
대만에서 가방 잃어버린 이야기(2) - 새로움에 취하다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들어서자 습기를 머금은 따뜻한 공기가 주위를 감쌌다. 우리나라와 묘하게 다른 바람냄새가 솔솔 느껴졌다. 비행으로 쌓인 피로를 기지개와 함께 날려 보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1시간이나 일찍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상상황 악화로 인해 비행기가 연착되었고, 혹시나 해 남겨둔 시간적 여유는 사라지고 말았다. 입국수속을 마친 우리는 대만의 고속열차 HSR(High Speed Rail)을 타기 위해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일단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트래블로그 카드를 사용해 공항에 있는 ATM기에서 돈을 인출했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달리 여섯 자리 비밀번호를 사용했다. 미리 공부한 대로 뒤에 00을 붙이니 기계는 지폐를 뱉어냈다. 주머니에 대충 욱여넣고는 택시를 잡으.. 2024. 1. 21.
대만에서 가방 잃어버린 이야기(1) - 극적인 도착 스마트폰의 알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공기를 좌우로 흔들었다. '때가 되었구나.' 침대 위에 누워있던 나는 알 수 없는 상쾌함과 함께 두 눈을 부릅 떴다. 2시간 잠을 잔 것 치고는 꽤나 컨디션이 좋은 듯했다. 기지개를 켜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시끄럽게 알람을 울려대는 기계의 화면은 지금이 새벽 4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상했다. '어라? 나는 분명히 1시 반에 알람을 맞춰놨었는데?'. 무언가 잘못되었다. 다음 순간 뇌리에는 한 장면이 스쳐갔다. 그것은 내가 제시간에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던 스마트폰의 알림을 끄는 장면이었다. 잠결에. 그것도 두 번이나! 큰일이었다. 7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게끔 예약했던 공항버스는 이미 출발한 지 오래였다. 나에게 남은 것은 앞으로 3시간 3.. 2024. 1. 21.
버거를 먹기 위해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서해랑길 68번 코스(2) . 치즈 베이컨 버거 한 개랑 체리 코크 하나 포장해주세요~ 앞 선 두 명의 주문량이 꽤 많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포장을 한 뒤 언덕에 주저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먹을 계획이었다. 몸이 땀으로 절어있는 터라 매장 내부의 에어컨 바람은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졌다. 주문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가 처마 밑에 털썩 주저앉았다. 네 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걷다 보니 발끝이 살짝 저려왔다. 안쪽의 직원이 급히 나를 따라 나왔다. “여기로 가져다 드릴까요?” 참으로 친절한 곳이었다. 그렇게 해달라고 얘기한 뒤 발가락 테이핑을 다시 했다. 테이핑을 안 했던 발가락 하나에 물집이 생기고 있었다. 테이핑을 마치고 바다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언제부터였는지 오늘 아침의 해와 구름의 싸움에서 해는 패배했고, 그림자는 이미.. 2022. 8. 21.
버거를 먹기 위해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서해랑길 68번 코스(1) . 한여름의 그늘막이 되어주던 나무의 이파리가 하나 떨어지고 있었다. 아직 푸르른 벗들이 많건만 어찌하여 이른 생을 마감하는가. 가을이 벌써 이만치 다가옴을 느꼈다. 오전 5시 30분. 고요히 가라앉은 옅은 새벽안개가 호수 공원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자리를 지키려는 안개의 무게감이 오늘 날씨를 일러주고 있었다. 시골 출신인 아버지는 내게 어렸을 적 주변 환경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를테면, 지난밤 구름의 형태로 말미암아 다음날 비가 내릴 것이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 덕에 나도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대략적인 날씨의 흐름 정도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창 밖을 내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안개가 낀 걸 보니 오늘은 적어도 지난번 트래킹 때보다는 날씨가 좋겠구나!’ . . 이번에.. 2022. 8. 21.
주말마다 비가 와서 급발진으로 다녀온 트래킹 - 서해랑길 65번 코스 .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땐 창가에 떨어지는 빗소리만이 방안을 맴돌았다. 하늘도 원망스럽지. 어떻게 황금 같은 일요일에 비를 내려주시는가! 그도 그럴 것이 최근 한 두 달 동안은 거의 매주 주말마다 비가 내렸다. 5일간의 노동 끝에 주어지는 이틀 간의 달달한 휴식 이건만. 오늘도 야외활동을 못한다는 생각에 온 몸이 찌뿌듯했다. 창가 책상에 앉아 물 한잔을 마시며 하늘을 원망했다. 하, 어디론가 자유로이 떠날 수 있는 시간 유일한 시간인데 그저 집에만 있어야 하는 것인가. 비는 점점 거세게 내렸다. 태풍이 두 개나 올라오고 있다고 했다. 젠장. . 그러나 내리는 비도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나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덥고 습한 여름이잖아 그래! 차라리 비를 맞으면서 걸어 다.. 202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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