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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46. '유럽 도시 기행 2(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유시민

by 세자책봉 2022.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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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 기행 2(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유시민 저, 2022, 생각의길

최초 작성일 2022.08.18

2022. 08. 19. 2주 동안 벌어진 많은 일들로, 휴가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유시민 작가님의 유럽 도시 기행 1편을 읽은 지 1년이 넘은 것 같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의 공항이 문을 닫고, 교류가 제한된지라 단기 내 후속 편이 출시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유럽 도시 기행 2편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동네에 한 개뿐인 서점에 찾았다. 표지를 들여다보니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동유럽에 있는 중세~근대의 주요 도시에 방문한 듯했다.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국경을 하나만 넘으면 아직까지도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있는 동유럽 이건만 그곳을 언제 방문한 것인지 참으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이번 여행기에는 지역의 역사, 정치, 철학, 사회, 문화 등이 작가님 특유의 스타일로 어떻게 버무려져 있을지 기대 한가득 책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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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Wien, Vienna>

유럽 도시 기행 2편의 첫 번째 도시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다. 사실 빈은 영어식의 또 다른 이름 비엔나로 잘 알려져 있는 도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원자력연구원에 근무하는 사촌 형의 한때 주 출장지가 바로 비엔나였다. 출장을 다녀오며 업어온 비엔나의 초콜릿이 어찌나 달콤하던지. 어린 시절부터 같이 살던 할아버지가 참으로 좋아하시며 잘 포장된 초콜릿 한 알을 내게 주시던 것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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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는 독일의 동쪽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다. 고대 독일어 외스터라이히가 ‘동쪽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이름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역사 덕후답게 유시민 작가님은 이번 빈 방문에 도심 순환도로인 링-슈트라세(줄여서 링)를 따라 슈테판 성당, 예술사 박물관과 제체시온, 쇤브룬과 벨베데레 등 과거 합스부르크 제국 시절의  찬란했던 공간의 역사를 음미한다. 또한, 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알린 사라예보 암살 사건과 그로 인한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 침공 그리고 독일의 나치 점령 시절까지, 약 16~20세기까지의 오스트리아 역사 문화 예술을 종합적으로 아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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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Budapest>

주변에서 동유럽을 다녀왔다 하면 항상 보여주는 사진 중 하나는 바로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 야경 사진이다. 어두운 밤 노란빛 은은한 건축물과 강가에 비친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참 멋진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도 한번 꼭 가보고 싶은 도시 중 하나인 부다페스트는 오스트리아의 동쪽에 위치한 국가 헝가리의 수도다. 헝가리 사람은 서기 896년 무렵부터 부다페스트에 정착을 했던 머저르족의 후손이다. 그래서 헝가리의 정식 국호는 머저르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이 코리아라고 불리는 것과 같은 이유로 외부로부터는 헝가리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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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님은 성 이슈트반 대성당, 언드라시 거리, 시너고그, 부다왕궁, 국회의사당 등 세체니 다리를 기점으로 부다와 페스트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에 발걸음을 옮겼다. 부다페스트는 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나우 강을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한 문화관광지구 부다와 동쪽에 위치한 산업행정지구 페스트가 합쳐진 도시다. 과거 부다와 페스트는 별개의 도시였지만, 19세기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의 지휘 하에 만들어진 세체니 다리 덕분에 문화와 산업, 행정을 아우르는 하나의 큰 도시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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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헝가리의 역사와 정치상황은 지정학적 위치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쪽으로는 나치당이 집권했던 독일과, 동쪽으로는 공산당 소련의 정치적 영향력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헝가리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 우리나라도 서쪽으로는 중국의 공산당이, 동쪽으로는 미국의 영향 아래 외교를 펼치며 정치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쉽게 안정될 수는 없는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대단히 조심스럽고 엄중한 위치일 수밖에 없건만, 작금의 정치인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 과거 머저르왕국의 창시자인 이슈트반(세체니 이슈트반과 동명이인)이 왕국에 기독교를 받아들이고자 했던 이유. 어쩌면 그의 판단은 종교적인 영향 아래 왕국의 정치적 안정을 취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유시민 작가님의 가설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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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Prague, Praha>

스카이 다이빙을 하고 싶은데 어디서 하는 게 좋을까요?

 

위의 질문에 생각보다 많은 스카이 다이버들은 프라하를 추천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빨간색 도시가 아름답다나 뭐라나. 스무 살 무렵 만난 한 지인은 그것에 대해 무려 한 시간이나 넘게 이야기했었다. 그로부터 십 년 뒤, 책에 실린 유시민 작가님이 찍은 ‘프라하성에서 내려다본 프라하 도심’ 사진을 보니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았다. 프라하는 독일의 동쪽, 오스트리아의 북쪽에 위치한 국가 체코의 수도다. 지금의 체코가 위치한 땅에는 오래전부터 켈트족이 살았다. 체코는 보헤미아가 국토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데, 보헤미아는 켈트족의 지파인 ‘보이족’이 사는 땅을 의미한다. 체코 말로 보헤미아를 체키, 주민들을 체크라고 한다. 결국 체코는 보헤미아이고 보헤미아는 곧 체코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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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인은 9세기 말 보헤미아에 최초의 왕국을 세웠지만 14세기 이후 룩셈부르크 가문을 거쳐 빈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하에 들게 된다. 프라하에서 태어난 카렐 1세가 14세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렐 4세로 임명되며, 체코는 한 때 정치, 종교, 상업적으로 부흥하기도 했지만 16세기 후스전쟁으로 인해 내리막을 걷게 된다. 교수였던 얀 후스는 15세기 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했고, 이로 인해 발생한 여러 가지 사건들로 교황청은 프라하에 군대를 파견한다. 후스는 죽고 프라하는 패배했다. 그러나 이후 독일의 마르틴 루터에 의해 후스의 신념은 계승되었고, 결국 30년 전쟁 끝에 유럽에는 대대적으로 종교개혁이 이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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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최소한 공정하고 정당하며 우리가 흔히 옳다고 믿는 신념은 결국 언젠가 세상을 바꾼다. 비록 그것을 얻는 과정은 인간의 존망의 위험을 넘나들 정도로 어려운 일이지만, 결국 인간은 해내고 만다. 대괄호를 하나 두고 싶다. (무엇 무엇)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기대되고, 인간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인간이 해내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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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Dresden>


유럽 도시 기행 2편의 마지막 종착지는 독일 서부 끝자락에 있는 도시 드레스덴이다. 한때 바로크 도시 또는 엘베의 피렌체로 불리던 드레스덴은 1945년 연합국의 융단폭격으로 많은 것을 잃었고 그것의 참상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나치 전범국에게 참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님의 표현대로 ‘가해자의 몸에 남겨진 상흔’에 동의하는 바이다. 드레스덴을 부흥시킨 왕은 18~19세기 작센왕 아우구스투스 1세다. 그 시절 드레스덴은 작센 왕국의 수도였다. 공정왕 또는 정력왕의 별칭을 지닌 그는 수많은 건축물을 세우고 바로크 스타일의 문화 예술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드레스덴은 바로크 도시로 불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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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된 독일은 동서로 나뉘었고 동독에 위치한 드레스덴에는 사회주의 체제의 물결이 일었다. 도시는 아직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공동주택과 알트마르크트 광장 맞은편에 있는 문화궁전에 남겨진 초대형 벽화에는 사회주의 체제 시절의 양식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문득 드레스덴은 참 복잡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던 도시가 일순 사라지고 사회주의를 거쳐 오늘날 자본주의를 받아들였다. 그곳의 심정은 어떨까. 그곳에 오랫동안 살아왔던 이들은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갖게 되었을까. 시대의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변화의 초과한도를 벗어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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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우리는 변동성과 복잡성이 너무나도 커진 세계에 살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제레미 리프킨의 말마따나 엔트로피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사회이며, 레이 달리오가 주장하는 경제 순환 사이클의 하락점이며 최대 복잡계인 5단계의 끝자락(미국을 기준으로)에 진입하고 있는 시절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시대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경험을 했던 이들은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또 어떻게 휩쓸렸는지 알아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유시민 작가님의 여행기를 빼놓지 않고 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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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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