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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45. '오래된 질문(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 장원재

by 세자책봉 202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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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질문',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 / 장원재 저, 2021, 다산북스
최초 작성일 2022.08.01

2022. 08. 02. 비가 그치면 삼삼오오 모여 산책하기 좋은 곳, 바로 호수공원.

인간이란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창조주다. 바로 지금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삶은 창조된다. 거짓말을 한다. 그러면 거짓말하는 인생이 된다. 욕설을 한다. 그러면 욕설하는 인생이 된다. -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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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고 죽는다. 개별 주체의 죽음은 찰나의 순간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계속된다. 이전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로.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결국 인간은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한다. 이로써 니체가 제시한 엉겁회귀의 개념은 꽤나 명쾌하게 인간에게 적용된다. 인간은 개별 주체이면서 인류의 역사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번 주어지고, 이러한 과정에 인간은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삶은 왜 고통스러운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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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술의 발달로 앞선 세대가 남겨 놓은 깊은 사유의 조각을 훔쳐볼 수 있게 된 시대임에도 이전과 같은 질문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인간은 매 순간 개별 주체로 우선 존재한다는 방증이려니. 시대를 지나도 메아리 없는 물음은 때로 그것 자체로 침범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인 듯 정답에 가까워지고자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인간을 공중에서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인간은 같은 질문을 멈출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 이 세상에 두발을 딛고 서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고민은 시작된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인간의 존재 의지는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자의인가? 타의인가? 우리는 이처럼 깊은 근원으로부터 올라오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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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생물학자 데니스 노블 교수는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의 초청으로 대한민국의 유명 사찰에 방문했다.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사찰 방문 초청에 흔쾌히 승낙한 이유는 그가 이미 오래전부터 불교에 관심이 있었을 뿐 아니라 인간 존재로부터 촉발되는 깊은 물음에 가르침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 봉은사를 시작으로 통도사, 실상사, 백양사 천진암 그리고 땅끝에 위치한 미황사에 들렀고, 그곳에서 한국의 고승 네 명을 만나 ‘오래된 질문’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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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난 네 명의 고승은 성파 스님, 도법 스님, 정관 스님, 금강 스님이다. 성파 스님은 한국 불교의 어른으로 불리며 현재는 통도사 방장으로 조계종 원로회 의원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실상사 회주는 도법 스님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큰스님으로 잘 알려져 있는 도법은 제주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 되던 해 출가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저서로 ‘지금 당장’, ‘내가 본 부처’, ‘붓다, 중도로 살다’ 등이 있다. 한국의 사찰음식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스님은 바로 정관 스님이다. 정관은 현재 백양사 천진암 주지로 있으면서 불교의 철학이 담긴 요리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셰프이기도 하다. 금강 스님은 땅끝 해남의 미황사에서 20년간 주지를 역임하며 달마고도를 기획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으며 현재는 제주도 원명선원에 정착하여 참선수행을 가르치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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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왜 괴로운가? 노블 교수의 첫 번째 물음에 스님들은 이구동성으로 괴로움 즉, 고통의 본질을 정확하게 직시해야 하며 그것에 맞게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어떠한 스테레오 타입에도 영향을 받지 아니한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기본자세다. 기본자세가 갖춰지면 이후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명확하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면 되고, 걷고 싶으면 걸으면 된다. 그것으로 고통을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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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데니스 노블입니다.
- 당신은 그 이름이 없으면 누구입니까?


통도사에 들른 데니스 노블 교수를 쩔쩔매게 만든 성파 스님의 질문이다. 우리는 타인이 부르는 이름에 얽매여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나 자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이에 대해 도법 스님은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상호작용 즉, 관계다. 비록 인간이 민족 또는 국가로 구별되어 별개의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구라는 행성에 두 발 딛고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는 데니스 노블 교수의 시스템 생물학과도 일맥상통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DNA는 그 자체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DNA와 수많은 유기체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명 활동이 일어나며 그것으로부터 무언가 유의미한 것이 태어날 수 있다. 우주 전체를 이루는 입자의 수 : 약 10^80승, 인간의 유전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 수 : 약 10^72403승. 10^80승과 10^72403승의 기적. 결국, 인간은 주변의 수많은 것들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존재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또 다른 나는 절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특별해요. 모든 삶은 귀중한 거예요. 자신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고 진지한 태도로 삶을 대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 삶의 방향을 찾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해요. - 데니스 노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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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데니스 노블 교수의 마지막 질문이다. 스님들은 이에 공통적으로 한 가지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그것은 바로 주체성이다. 특히 도법 스님이 설명하는 붓다의 가르침은 가슴이 시릴 정도로 나를 후벼 파는 듯했다. 붓다는 이번에도 본질을 꿰뚫는다. 인간이란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창조주다. 바로 지금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대로 삶은 창조된다. 거짓말을 한다. 그러면 거짓말하는 인생이 된다. 욕설을 한다. 그러면 욕설하는 인생이 된다. 얼마나 단순 명료 한가! 결국 인간은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려 노예로 살 필요 없이 자신의 인생을 창조하는 주인으로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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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에 대해 금강 스님은 세계적인 셰프답게 음식에 빗대어 걱정 어린 조언도 한마디 한다. 된장의 발효는 일 년 내내 계속되는 게 아니고 뜨거운 태양과 장마를 지나는 한여름 동안에만 발효가 되는데,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이며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시절을 거쳐 생이 된장처럼 발효되고 변화하다 보면 어느새 인간도 새로운 존재가 된다고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성을 알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은 계절이 변해 감에 따라 자연스레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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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하자. 유전자에 따라 모든 것이 운명처럼 정해져 있다는 진화론에 기반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과 달리, 절대 유전자는 모든 것을 결정하지 못한다. 물론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다고 인정하며 상호 존중하는 사회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그 과정에 조금이나마 허탈감이나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잘하냐 못하냐의 차이는 분명 존재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수준이 나뉜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가 DNA에 굴복할 필요는 없다. 운명을 따지고 유전자를 따지는 것은 스스로 한계를 정해 놓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인간의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에 역설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자유를 외치면서 무엇하러 스스로 넘지 못할 벽을 만드는가. 기억해라. 모든 것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 벽을 허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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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를 발산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이 어디에 존재할 수 있느냐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회사, 학교 등 집단에 소속되어 존재할 수 있던 과거와 달리 개인주의가 주요 사회문화가 되어버린 현실에 개인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은 그나마 가족만이 유일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가족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은 더 이상 어딘가에 소속되어 존재할 수 있는 곳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존재할 곳을 잃어버린 많은 인간들이 세상을 방황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세대의 일원으로서,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적극 권장한다. 나 역시 그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고, 나는 그들이 방황을 멈추고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아 존재의 이유를 찾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들이 멋지게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는 그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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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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