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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43. ‘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낯선 곳에서 생각에 중독되다)’, 김경한

by 세자책봉 2022.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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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낯선 곳에서 생각에 중독되다)’, 김경한 저, 2021, 쌤앤파커스

최초 작성일 2022.07.02

2022. 07. 02. 책을 읽자마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졌다. 빨리 마무리하고 떠날 테다!

인문학(人文學, 영어: humanities): 인간과 인간의 근원 문제,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인간의 가치와 인간만이 지닌 자기표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에 관심을 갖는 학문 분야로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
잊기는 쉬워도 잊히기는 어렵다. 동주의 시비가 서있는 공간에서 나의 사고는 망각과 기억 사이를 분주히 들락거렸다. 앞마당에는 벌써 홍매화가 만개해 있었다. 바람이 아직 차가운데 이렇게 모든 걸 다 내놓고 봄을 맞이하는 매화의 향기가 애처롭다. 어긋난 시대의 길목에서 오래전 목숨을 떠나보낸 한 청년이 해마다 때 이른 홍매로 부활하는 것 아닐까. 그의 언어는 죽어서 명예를 지켰고 남겨진 사람들의 긍지로 부활했다. 그를 따라다니던 죽음의 십자가를 넘어야 오랜 이 갈등이 풀려날 텐데. 아직은 두 나라 사이에 가파른 비탈길은 끝나지 않고 있다. 슬기롭게 지나쳐야 할 역사의 커튼 뒤에서 서로가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다. 아픈 기억을 놓아야 서로에게 미래가 있지 않을까.
- '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 2부 일본 인문 기행 '윤동주, 얼음 속의 잉어' 中,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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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에 체리를 너무 많이 먹은 탓일까, 이른 취침에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영 버겁다고 느껴졌다. 11월,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태어난 나는 여름보다는 겨울이 좋다. 육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겨울의 느낌이 훨씬 좋다. 두꺼운 털로 쌓인 온몸에서 느껴지는 내면의 따스한 온기와 외면의 차가운 공기의 대비가 좋다. 스무 해 전 겨울, 지난밤 찬기로 굳어진 온몸을 녹여주던 이불속 구들장의 온기에 파묻힌 채, 아침이면 청소를 한다는 명목으로 기꺼이 창문을 열어 자식들을 깨우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온몸을 휘감던 따스함과 얼굴과 발끝에 느껴지던 차가움의 조화를 나는 잊을 수 없다. 갓 튀겨진 탕수육을 앞에 놓고 부먹이냐 찍먹이냐 싸울 시간에 탕수육의 절반에 소스를 부어 부먹과 찍먹을 동시에 느끼는 것. 그것이 가능한 건 겨울이다. 그러나 여름이 좋은 이유도 있다. 이 무렵이 되면 맛있는 체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상 위에 놓인 접시를 보니 지난밤 최소 스무 알 이상의 체리를 먹은 듯하다. 어휴. 오늘 오전만큼은 체리를 멀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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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수식과 숫자로 고뇌하는 공학도였던 내게 인문학이란 허상과 같았다. 인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무엇보다 숫자의 틀에 갇힌 사고에 그것이 파고들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히 언제인지도 알 수 없이, 무지의 해변가에 거닐던 나는 커다란 너울에 휩쓸리듯 인문학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어쩌면,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미 자연스럽게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을 PC방과 함께하던 어린 시절에도 손에서 책을 놓는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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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것의 출발점은 모호할지라도, 나의 인문학 탐구에 불을 붙인 한 명의 인물은 아주 명확하다. 유홍준 작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처음 읽은 것은 군 시절이다.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 틈으로 떨어지던 새의 깃털을 모아 날개를 만들던 이카루스의 심정이었을까, 이 시대의 거대한 사회 시스템은 내게 자유를 빼앗았고 나는 새장 속에 갇힌 한 마리의 새의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곳을 벗어나려는 의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으니, 나는 ‘현란한 세상’의 세르반도 수사였다. 잦은 고문과 투옥으로 쓸쓸히 죽어가던 그의 육신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산속에 갇혀있는 나의 육신에도 온전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자유로운 정신뿐이었다. 자유로이 날아다니던 영혼에게 길을 안내해준 것이 바로 우리나라 전국의 여행기였다. 그렇게 나는 한 가지를 다짐했다.

“나도 언젠가 반드시 이런 걸(여행기 쓰는 것을) 하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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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철학, 과학, 문화, 사회, 종교 등 인문학자들은 자그마한 사유할 거리에 만족하고, 그것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습성이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아우르고자 한다. 그것이 그들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인문 여행자, 도시를 걷다”의 김경한 작가도 마찬가지다. 글의 첫머리부터 인생의 비유를 카이로스와 크로노스로 장식한 그의 글솜씨는 단연 돋보인다. 그의 거침없는 글에는 여행지에 대한 사유가 잔잔하게 다가오는 듯하면서도, 그 이면엔 묵직한 깊이가 자리하고 있다. 문화유산을 찾아가 상세한 설명으로 이해를 돕고, 직설적인 비평으로 독자에게 가치를 일깨우고자 하는 유홍준 작가님과 달리, 도시 속을 거닐며 그곳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그것에 영감을 받으며 사유하며, 사유의 장을 만드는 김경한 작가님은 조금 더 사색가에 가깝고, 인문학자에 가까운 듯한 모습이다. 그가 무뚝뚝하게 던진 여러 가지 사유는 아직까지도 가슴 한편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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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제대로 발을 붙이지 못하고 금세 집으로 되돌아오는 습관이 생겼다.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 같던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 마주하는 초라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을까. 스트레스를 풀고자 떠난 여행은 되려 스트레스만 더할 뿐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어디에도 존재하고 싶으나 어디에도 존재하고 싶지 않은 두 욕망이 나를 괴롭힌 결과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현실에 안주해야 하는 걸까? 현실을 도피하고 떠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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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고 싶다. 온몸을 술에 흥건히 적셔 오늘 밤과 내일 아침이 구분되지 않는 여행 말고, 내 옆의 누군가를 신경 쓰며 에스코트해야 하는 그런 여행 말고, 오로지 나를 위한 여행을 가고 싶다. 나와 관계있는 모든 사회적인 것들로부터의 단절되어 어디에도 눈치 보지 않고 진실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가고 싶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인생 선배들의 발자취를 좇아 같은 공간에 같은 공기를 마시며 그들과 함께 사유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떠나고 싶다.

 

짧은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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