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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25. '1984(NINETEEN EIGHTY-FOUR)', 조지 오웰(George Orwell)

by 세자책봉 2021.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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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George Orwell) 저, '1984(NINETEEN EIGHTY-FOUR)', 1949
최초 작성일 2021.09.07

2021. 09. 08. 비내리는 창가에 앉아 휴가를 만끽하며...

디스토피아(dystopia): 디스토피아 또는 안티 유토피아(anti-utopia)는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공동체 또는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사회는 주로 전체주의적인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통제받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단어는 존 스튜어트 밀의 의회 연설에서 처음 쓰인 단어이다. 위키백과 참조
"윈스턴, 우리는 모든 면에서 삶을 통제하고 있네. 우리가 하는 일에 분노하여 반항하는 인간 본성이라 불리는 어떤 것을 상상하고 있을 테지. 그렇지만 우리는 인간 본성 자체를 창조하네. 인간이란 끊임없이 변하기 쉬운 존재지. 자네는 노동자나 노예들이 들고일어나 우리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구태의연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걸세. 그런 생각은 아예 집어치우게나. 그들은 짐승처럼 무력하네. 인간성이 곧 당일세. 그 나머지는 우리 밖에 있는 거야. 우리와 무관하단 말이네." - 3부 中 오브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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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문제없이 오랜 시간 삶을 운전해온 무거운 몸을 이끌며 닳아 없어진 연골로 걸음이 불편해 한 손엔 지팡이를, 남은 손으로는 세상의 중심을 잡으며 걸어야 하는 자글자글한 눈가의 주름이 인상적인 우리 할아버지는 1924년생이시다. 출생 연도가 말해주듯 할아버지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근현대 역사의 산 증인이시다. 일제강점기 시절 어디인지 이름도 모를 곳으로 끌려가 두려움과 배고픔을 견디며 비행기 부품을 조립했던 공장은 오늘날 미쯔비시로 알려지게 되었고,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적인 침략으로 미처 도망갈 새 없이 인민군에 의해 불로 녹여내어 병장기를 만들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빼앗겼으며, 19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에 적극 참여해 그동안 무너졌던 삶을 재건하는데 온 힘을 다 쓰시는 등 대한민국 역사의 거대한 굴곡을 온몸으로 마주하셨던, 그런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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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계신 고향에 들러 저녁밥을 먹던 어느 날은 문득, 지금 내 나이에 할아버지는 뭘 하고 계셨는지 궁금해 여쭤봤던 적이 있다(할아버지의 1950년 즈음이 내 나이라 6.25에 대해 여쭤봤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물음에 잠시 과거로 회귀하려는 듯 눈을 감고 한 뜸을 들인 후 내뱉으신 답은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할아버지 왈,

당시에는 인민군이 공산당에 들어올 건지 말 건지 선택하라고 날마다 물어봤어. 

 

당시 인민군은 밥을 짓기 위한 솥을 포함해 철로 만든 모든 것들을 강제로 수거하기 위해 점령지역의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한편으로, 지역 장악은 물론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공산당 사상 전파 및 회유를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사상교육 때 레닌이나 마르크스에 대해 들어봤던 기억이 있다고 하시면서 실제로 주민들 몇몇은 공산당원이 되었고, 인천 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남한에서 철수하면서 같이 이북 했다고 하셨다. 이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그런 분위기에서 할아버지는 어떻게 인민군에 끌려가지 않았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하시는 말씀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꾀병을 부렸어. 발목이랑 무릎이 안 좋아서 멀리 걸어가지 못한다고 꾀병을 부렸더니 집에 보내더라고.

 

군인인지, 프롤인지, 권력 앞의 장기말인지 본인들도 알기를 포기한 채 시대 사상에 휩쓸려 지껄이던 공산주의 프로파간다 조차도 꾀병 앞에선 무력했던가. 아니다 이럴 땐 오히려 꾀병엔 약이 없다고 해야 하던가. 생각해보면 도망치기 다급했던 인민군들 입장에선 움직임에 지체될만한 것들은 굳이 데려가려 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그때의 이야기를 들으며 할아버지에게 공산당원이 되지 않으신 게 천만다행이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었다. 그리고 그 말은 '1984'에서 지독하게 풍기던 디스토피아적 분위기에 마치 현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듯, 머릿속을 자유롭게 유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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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George Owell) 작가님의 '1984'는 디스토피아적 SF 장르로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를 유지하고 있는 명작 소설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빅브라더(Big Brother)가 기원된 책이기도 하다. 책의 초반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문장도 하나 있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

 

이야기는 통제와 검열, 고문이 가득한 전체주의 기반의 가상 국가 오세아니아에 살고 있는 주인공이 겪는 사건들로 진행되는데, 전체주의를 다루는 '1984'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이 작품이 쓰인 1949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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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고립되어가던 소련이 중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이 힘을 합치는 듯했지만, 얼마 못가 국민당과 공산당은 주도권을 놓고 중국 내 전쟁을 시작하게 되면서 국공내전이 2차에 걸쳐 발발하게 되었고, 사실상 1940년대 후반에 국공내전이 종결되면서 중국은 공산화의 물결로 뒤덮이고 있었다. 또한, 1946년 이후 유럽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소련의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로 냉전이 가시화되면서 공산주의의 폐쇄성을 빗대어 철의 장막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1949년 한국에서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암살되어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공산당을 지지하던 북한의 김일성 세력이 남한을 침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하였다. 즉, 전 세계가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심으로 가득 차 있던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던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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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폐쇄적인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했던 20세기 초반의 사회 분위기 속 오늘날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알려져 있는 1924년 출판된 예브게니 쟈마찐 작가님의 '우리들', 1932년 출판된 올더스 헉슬리 작가님의 '멋진 신세계' 그리고 조지 오웰 작가님의 '1984'까지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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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는 달리 1991년에는 공산주의를 대표하던 소련이 붕괴되며 공산주의가 몰락하게 되었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냉전이 종료되면서 이념 대립으로 다사다난했던 20세기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렇게 오늘날에는 대표적으로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북한이 공산주의의 맥락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9월의 중국의 공산주의는 점점 더 디스토피아적 전체주의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중국은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절차로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자의 얼굴을 스캔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이미 사회 시스템 곳곳을 이용하기 위해선 얼굴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머신러닝으로 학습시켜 CCTV를 이용해 거리의 자국민들을 구별할 수 있는 AI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불과 한 달 전에는 중국의 공산주의와 반대인 자본주의 시장인 미국의 나스닥에 상장된 빅데이터 기반의 기업에게 자국민의 데이터를 함부로 외국으로 유출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상장을 폐지하라며 거센 압박을 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그렇게 오늘의 중국은 공산주의의 폐쇄성에 머신러닝의 급격한 발전으로 자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까지 더해져 그 어떤 국가들보다 디스토피아적 전체주의 국가에 가까워지고 있다(AI 기술뿐 아니라 공안의 영향력 강화 등 더 있지만 생략, 궁금하신 분들은 참조). 사실, 이는 비단 중국으로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수많은 국민의 개인정보를 토대로 빅데이터 기반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기업이 있는 모든 국가들이 자연스레 해당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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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토론에 항상 등장하던 주제였던 CCTV와 사생활 침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관심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오히려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날엔 우리의 몸을 지키고 행동을 대변하기 위해선 CCTV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포함한 각종 스마트 기기의 발달로 사람들의 인식이 변했든, 더 이상 예전만큼 사생활 침해에 관심이 없든 간에 치열하게 토론을 했던 과거의 그 어느 순간보다 오늘날 우리들 앞에 당면한 문제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점점 더 빨라지는 기술 개발 속도의 폭주에 현명한 규제와 대응방안으로 기술에 인간이 지배당하는 디스토피아적 세상이 아닌, 기술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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