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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24. '영혼의 미술관(ART as THERAPY)',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by 세자책봉 2021.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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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저, '영혼의 미술관(ART as THERAPY)', 2013
최초 작성일 2021.08.31

2021. 09. 02. 자랑 하나 하겠습니다. 저 내일부터 휴가입니다.

예술(藝術):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공간 예술, 시간 예술, 종합 예술 따위로 나눌 수 있다. 아름답고 높은 경지에 이른 숙련된 기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정 시점이 되면 우리는 미술관이나 공원 안의 조각품을 떠나 예술의 진정한 목적인 삶의 개혁을 추구해야 한다.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예술이 덜 필요하고 덜 예외적인 사회를 창조하는 데 있다. 예술에 대한 진정한 열망은 그 필요성을 줄이는 데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예술이 나타내는 이상들을 흡수한 뒤, 아무리 우아하고 의도적이어도 단지 상징적으로밖에 드러내지 못하는 가치들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 '영혼의 미술관(ART as THERAPY)' Part. 정치,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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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비소년이 유행하던 시절, 숫자 ‘6’을 정사각형의 왼쪽 두 모서리에 쓰고 양 옆으로 뒤집어진 모양의 ‘6’을 오른쪽 두 모서리에 쓴 후 사람 형상의 그림을 쉽게 그리는 방법(얼굴엔 동그라미 두 개와 글자 ‘돈’을 길게 그려주고, 그 위에 적당한 크기의 직사각형을, 마지막으로 몸의 중심에 ‘王’을 그려주면 완성되는 이 그림을 우리는 ‘왕서방’이라고 불렀었다)이 유행했을 때가 있었다. 또 박지성이 맨유에 입단하던 때에는, 2차원의 글자에 적당한 두께와 그림자를 그려 넣어 마치 3차원으로 보이는 입체 글자를 그리는 게 유행이었다. 이 두 시절 나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내가 지독히도 그림을 못 그렸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짝꿍과 공책에 그림을 그리면서 장난을 치건, 회초리로 탁 탁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시던 미술 선생님 앞에서건, 그림을 너무 잘 그려서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 집에서도 그림을 그리던 누나 옆에서건 아주 일관성 있게도 못 그렸다. 나의 그림 솜씨는 ‘너는 그림은 잘 못 그리더라’ 라며 일침을, 한편으로 얘가 예체능엔 너무나도 실력이 없으니 공부를 시키면 되겠거니 안심하던,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 준 세상에 하나뿐인 여사님의 멘트에서 더욱 그 객관성을 유지했고 물론, 지금도 못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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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동안 내 인생은 그림, 사진 등 미술과 인연이 없었다. 음악과 달리 미술 세계는 경매를 통해 고가의 작품이 거래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부유층의 전유물인 것처럼 보여 무언의 보이지 않는 선이 있는 것만 같아 접근하기도 어려웠고, 큰 관심도 없었거니와 모르는 상태로 두어도 사는데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랬던 내가 미술에 그중에서도 특히 예술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불과 1년 전 이사를 한 뒤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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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직전 겨울, 절친한 친구와 함께 영국 런던에 잠시 배낭을 풀었던 적이 있다. 고전 양식과 멋들어지게 조합된 도시 건축물 사이로 얽힌 골목들은 오직 EPL 관람을 위했던 여행 콘셉트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그 순간만큼은 셔터 위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마구 누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잘 나온 사진 한 장을 골라 적당한 크기의 아크릴판에 인화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국 여행을 기념했다. 시간이 흐르고 1년 전 나는 하얀색 벽지로 도배되어 깔끔하면서도 밋밋한 거실이 있는 서산 시내의 한 오피스텔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인테리어를 위해 인화했던 사진을 거실 벽면의 중앙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걸어놓게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거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는 게 아닌가! 사진 속 하늘의 파란색 배경은 시원함과 편안함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분명히 말하긴 어렵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사진 한 장이 주는 영향력은 좁은 공간을 뛰어넘어 어느새 내 머릿속에 침투했고, 무관심으로 서서히 죽어가던 예술분야의 뉴런들에 새로운 동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렇게 예술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고 일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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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시절 '불안'을 통해 고립된 사회에서 느끼던 불안을 달래주던 알랭 드 보통 작가님과의 인연은 이번엔 예술작품에 대한 궁금증으로 '영혼의 미술관'을 통해 계속되었다. 여전히 알랭 드 보통 작가님은 독자들에게 매우 친절했다. 작가님은 예술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듯 하나의 주제마다 몇 가지 미술 작품에 대한 해설을 먼저 예시로 보여주며 경계심을 무너뜨렸고, 점차 예술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로 부드럽게 흘러갈 수 있게 글을 구성하면서 독자들을 배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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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미술관' 책의 첫 번째 주제는 예술의 방법론이다. 먼저 예술의 7가지 순기능(기억·희망·슬픔·균형 회복·자기 이해·성장·감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예술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부분을 되돌려주는 역할을 하며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그 외에 인간이 예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예술 작품이 어떻게 활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미술관의 예술 작품 전시 방법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부분이었다. 작가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일갈한다.

 

이 기관들은 작품에 대해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메시지들을 보여주어 스스로의 잠재력을 훼손하곤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작품 설명은 예술 양식이나 역사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별로 알고 싶지도 않거니와 지루하기만 한 정보를 받고 싶지 않아 본능적으로 날을 세우고 만다. 엎친데 덮친 격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작가가 되어 작품의 원 뜻을 알아내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이에 대해 작가님은 학술적 범주의 내용이 아닌 작품의 의도에 맞는 설명과 적절한 공간 배치를 하는 등 작품을 새로운 분위기 또는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하며 첫 번째 주제를 마무리한다.(친절한 작가님은 책에 적당한 예시를 남겨두었으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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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주제는 사랑과 예술이다. 작가님은 수많은 예술 범주 중 '사랑'을 개별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 작품이 많을뿐더러 사랑이 우리 삶에 중요한 감정이기 때문이며, 예술의 사명 중 하나는 우리에게 좋은 연인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세 번째 주제는 자연과 예술이다. 현대 인류에게 자연은 너무 익숙하면서도 멀리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자연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가치가 그리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작가님은 마음 같아선 항상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싶지만 거의 주목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무엇이기' 때문이라고 동조하면서도 우리 눈앞에 펼쳐진 자연에서 특별히 무엇에 내 마음에 드는지 알아내, 그 경험을 가슴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네 번째 주제는 돈과 예술이다. 작가님은 먼저 지금껏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술이라는 통찰의 결정적 원천을 이용하지 못한 까닭에 대해, 미술이 거시경제학에 유용한 충고를 해줄 후보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예술을 이해한다면 부러움을 사기 위해 잘못된 상품에 기꺼이 돈을 내고 구입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 손에 있는 돈을 어떻게 '잘' 써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자본주의의 막대한 생산력을 더욱 풍성하게 활용하기에 예술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하며 네 번째 주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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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주제는 정치와 예술이다. 몇몇 최악의 정치인들이 예술의 힘을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용도로 정치에 이용했고, 그 결과 정치와 관련된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에 부정적인 견해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작가님은 올바른 정치미술은 사회의 맥박을 감지하고, 집단생활의 문제점을 이해하고, 그 문제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관람자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예술은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설명하며 국가 대사관 건물의 상징성을 예시로 들어 내용의 이해를 돕고 있다. 마지막으로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예술이 덜 필요하고 덜 예외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데 있다고 즉, 예술이 당연한 세계를 만드는 데 있다고 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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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밴드 동아리에서 인연이 닿았던 한 선배 커플이 있다. 미대 출신으로 같은 과에서 만나 한동안 캠퍼스 커플 생활을 지내다 지금은 부부의 연을 맺은 지 꽤 오래되었다. 둘은 우리들 사이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몸과 날씨만 허락한다면 어디든지 슝슝 떠나는 재주가 있는 것으로 보아 마치 바람과 같다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다. '영혼의 미술관'을 읽으며 문득 이 부부가 생각이 난 것은 이들이 개최하는 북콘서트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매년 봄과 가을이 되면 몇몇의 작가, 미술가, 음악가로 구성된 한 무리의 예술인들을 이끌고 전국 각지에서 북콘서트를 주최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소수의 예술인들이 모여 예술을 위한 자리를 만들고 이것을 일상으로 녹여내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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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작가님은 책의 말미에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이제 예술가라고 해서 반드시 손에 만져지는 무언가를 만들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덜 냉담하고 덜 지루해할 수 있도록 공적인 공간에서 상호작용의 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일 역시 예술이 될 수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이미 예술가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예술을 일상으로 전파하려는 행위를 해오고 있었다. 그저 내가 배움이 부족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예술이 우리 주변에 있음에 무지했던 나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감탄하며,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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