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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22. '힐링 스페이스(Healing Space)', 에스더 M. 스턴버그(Esther M. Stern-berg)

by 세자책봉 2021.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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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M. 스턴버그(Esther M. Stern-berg) 저, '힐링 스페이스(Healing Space)', 2020

최초 작성일 2021.08.17

2021. 08. 17. 코로나 검사 후 결과를 기다리며...

신경 건축학(Neuroarchitecture): '신경과학(neuroscience)'과 '건축학(architecture)'을 합친 단어로 어떤 건축물이나 공간을 마주할 때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 분석하는 학문입니다. 즉, 쉽게 말하면 건축이 인간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을 바탕으로 인간에게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건축 심리 학문
사실 설계는 매우 철저한 작업이며, 엄청나게 많은 상호작용이 따른다. 결과물은 물고기나 말의 머리, 배의 돛 등 장기나 기관에서 영감을 얻은 최초의 형태만이 아니라 그 건물을 사용할 사람들, 용도, 건물이 들어설 장소, 이웃한 건물들 등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중략) '자연친화 설계'는 정원, 자연풍경, 예술작품, 마음을 달래주는 음악, 자연의 소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색 그리고 가족이 모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공간, 인체에 유해한 가스를 줄여서 실내 공기를 맑게 해주는 건축자재를 사용하고, 재생에너지 체계를 갖추고, 물을 재활용하고, 열린 공간을 만들고, 자연탐사로·발코니·정원을 마련하는 등의 환경친화론적인 특징, 이른바 '녹색' 특징을 포함하는 건축학의 한 분야다.
- '힐링 스페이스(Healing Space)' 10.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에스더 M. 스턴버그

지난 5월, 매년 여름철이 되면 수행하는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몇 주 전,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집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충남 논산의 계룡산 주변 조용한 시골마을에 있는 우리 집이 지어진 건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 1970년도 즈음이다. 회색 벽돌과 시멘트로 쌓아 올린 전형적인 시골집으로, 한 때 우리나라의 지방 곳곳을 녹색으로 물들인 새마을 운동과 함께 태어나 여즉까지 우리 가족을 보살펴 주고 있었다. 추억이 많은 곳이다. 할아버지는 봄철이면 산에서 여왕벌을 스윽 데리고 와 집 앞마당에 만들어 놓은 네모반듯한 벌집으로 거주지를 변경해주곤 했는데, 그러면 무서울 정도로 많은 꿀벌들이 여왕벌에게 잘 보이려 너도나도 단맛이 나는 반짝반짝한 것을 네모반듯한 집으로 가져왔고, 이는 곧 평소에도 우리 집에 꿀이 많은 이유이기도 했다. 아빠는 전날 마신 술기운을 덜고자 차가운 맹물에 섞어서 마시고, 엄마는 요리에 설탕 대신 사용했고, 나는 가래떡에 꿀을 찍어 먹듯 옆동네에 있는 공장에서 사 온 보리건빵에 꿀을 찍어먹는 걸 좋아했다. 이때, 반드시 꿀이 건빵 표면의 50% 이상 묻어야 한다. 꿀을 손가락은 물론 옷가지 여기저기에 다 묻혀가며 먹던 그 시절 그곳. 그 시절의 나와 함께 했던 집은 창고로 쓰던 건물을 제외하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발판만 남았고, 현재는 그 위로 새로운 건축물이 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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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다시 지어야겠다는 부모님의 의지는 집이 오래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노출되면서부터 더욱 강해졌다. 첫 번째 문제는 집의 구조가 비효율적으로 설계되어 공간 활용을 제대로 못하는 탓에 부엌과 안방은 지나치게 좁았고, 거실 또한 좁아 모두가 모이기에도 답답했다. 두 번째는 창이 충분히 크지 않아 채광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세 번째는 구석구석 통풍이 원활하지 않아,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생기기 일쑤였다. 물론, 집이 오래되면서 서서히 생긴 문제라기보다는 편하게 살 수 있도록 기초 설계가 잘 안된 탓이다. 부모님 또한 이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리모델링 대신 재건축을 선택하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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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취업이 된 이후로 부모님이 집을 다시 지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상태라 그간 나름대로 건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차였다. 어떻게 지어야 편안하고, 쾌적하고, 실용적이고, 감성적인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에 대한 나름의 과학적이고 수치적인 근거를 찾아 알려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건축과 출신이 아니라 접근을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책을 읽어도, 이를테면 천장은 3M 이상 높이여야 내부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고 답답하지 않은 충분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뇌피셜) 같은 공간과 인지에 관련된 내용은 쉽사리 찾아볼 수 없었다. 바바라 페어팔 작가의 공간의 심리학, 세라 W. 골드헤이건 작가의 공간 혁명 그리고 힐링 스페이스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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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확실한 건 있다. 에스더 M. 스턴버그 작가의 힐링 스페이스는 지금까지 읽어본 공간과 심리학과 관련된 책들 중 가장 명확한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공간과 심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것도 뇌과학적으로 말이다. 특히 편안한 수면과 관련된 세로토닌, 면역체계와 관련된 옥시토신, 스트레스와 관련된 코르티솔 등 주요 호르몬들의 분비에 따라 공간을 좋게 인식하는지 나쁘게 인식하는지, 또는 특정 공간이 호르몬의 분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수치적으로 정확하게 크기가 몇 대 몇 비율일 때 가장 좋고 이런 내용은 나와있지는 않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들을 수치적으로 표시할 수 없는 것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간을 느끼는 개개인마다 호르몬의 분비와 면역능력 또는 스트레스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획일화된 수치로 객관화하기 어렵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공간이 먼저인지, 호르몬의 분비가 먼저인지 따지는 것은 어쩌면 닭과 달걀의 관계를 따지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공간을 뇌과학적으로 설명하다 보니, 단순히 공간에 관심이 있어 읽는 독자들이거나, 뇌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 혹은 라이트한 독자들이 읽기엔 책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뇌과학에 큰 관심사가 없어 세부적인 내용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고 지금도 없는 건 사실이다(이해는 했다. 이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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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을 총괄하는 학문이 바로 위에 대문짝만 하게 써놓은 신경 건축학(Neuroarchitecture)이다. 현대 기술력으로 이제야 뇌과학이 조금씩 발전하는 것처럼, 아직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융합분야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성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몇 년 안에는 충분한 데이터가 쌓여 공간과 뇌의 인지 Road Map 정도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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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을 종합해보면 좋은 공간에는 일곱 가지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적절한 환기 시스템으로 쾌적한 실내가 유지되는지. 두 번째, 방음 타일 등을 활용하여 소음이 차단되는지. 세 번째, 적절한 창의 크기 선정 및 배치로 충분하게 빛이 들어오는지. 네 번째, 정원·공원 등 자연이 내다보이는 경치를 갖고 있는지. 다섯 번째, 기분 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향기가 날 수 있는지. 여섯 번째, 마음이 편안해지는 색감과 질감을 활용하여 인테리어를 했는지. 일곱 번째, 가족과 함께 머물 수 있으며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설계되어 있는지가 바로 그것이다. 굳이 '같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책에 따로 정리되어 있는 내용이 아니고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런 정보들을 미리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시점에 부모님께 조언해드릴 수 있었다(책은 상반기에 이미 한 번 읽었다). 그래서 지금 짓고 있는 집은 충분한 크기의 이중창이 거실에 설치되어 환기는 물론 적당한 빛을 받을 수 있고, 습하지 않도록 기초공사를 다시 했으며, 천장의 높이를 각 방마다 조금씩 다르게 하여 지루하지 않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아, 물론 온 가족이 들어와도 충분할 정도로 공간은 넓게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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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다. 내용의 이해 유무를 떠나서 독서로 조금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니던가. 단순히 책만 읽는 게 아닌 책을 읽고 무언가에 써먹는, 응용하는 이런 멋진 일 말이다. 독서를 끊을 수 없는 이유가 대부분 이런 경험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독서의 풍만함을 느끼며 기분 좋게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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