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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6. '데미안(DEMIAN)', Hermann Hesse(헤르만 헤세)

by 세자책봉 2021.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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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저, 옮긴이 이영임, '데미안', 1919

최초 작성일 2021.03.01

2021. 02. 27. 공릉동 어딘가의 옥상에서 열린 와인 파티

회의감(懷疑感): 마음속에 의심이 드는 느낌, skepticism, doubt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책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문구 중 하나로 데미안의 저 문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까, 왜 당시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데미안에 열광하고 의지했을까는 위의 문구에서 내포하고 있는 삶의 본질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현재 상황과 대비되어 더욱 이상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비유되는 '새'는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거니와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인들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 이 '세계' 환멸과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무언의 벽을 깨트려서라도 현실을 타개하고 싶었던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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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남짓 한 시절부터 이십 대 초입까지 주인공 '싱클레어'의 내면적 성장을 다룬 소설 '데미안'은 주인공이 조력자이자 인도자이자 친구인 '데미안'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부모님과 함께 자라면서 그동안 다뤘고 배웠던 사회적 관념들에 하나씩 의구심이 자리 잡게 되고 그에 따른(또는 시기적절한) 난관을 겪으며 싱클레어는 본인 자체로서의 본연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데미안을 포함한 몇 명의 조력자들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단순히 한 젊은이의 정신적인 방황을 극복하는 성장형 소설로 볼 수도 있지만 작가 헤르만 헤세의 일대기이 소설이 쓰인 시대상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한층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한 소설이 될 뿐 아니라 왜 고전의 명수로 꼽히는지 감이 오게 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책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기재하지 않으며 참고용으로 링크를 활용하길 바란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게 만든 이유이자 주인공이 방황하는 원인의 키워드로 대명제인 '회의감'을 뽑았다. 주인공이 그토록 고뇌에 가득 찬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이 인간을 성장하게 만드는 가에 대해 스스로 내린 결론이다.

  1. 시대에 대한 회의감

1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의 참혹함으로 인해 기존의 낡은 가치관에 깊은 회의감을 느낀 독일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이 주를 이루었으며 책 또한 당시를 관통하는 시대적인 회의감을 주인공의 성장과정 속에서 녹여내었다. 또한 '카인의 표적'과 '아브락사스' 이야기를 통해 독일의 젊은이들이 무언의 회의감을 느끼고 있지만 쉽사리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시대적 배경이라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2. 종교에 대한 회의감

책은 소제목들(카인, 야곱 등)부터 천주교를 믿고 있던 독일의 시대적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당시 유럽 전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직전의 홀로코스트들 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반유대 감정이 흔했다고 한다. 주인공 역시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유대인이라고 의심받는 데미안을 처음에는 경계하고 꺼려한다. 그와 점차 가깝게 지내게 되면서 낡은 종교(천주교)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게 되고, 주인공은 천주교의 색채가 옅어짐과 동시에 종교에 대한 즉, 유대인이고 아니고의 이분법적 영역을 뛰어넘게 된다. 주인공이 종교뿐만 아니라 이분법적 논리로 쌓여진 여러 집단지성에 대한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합일(合一)의 경지에 이르는 정신적인 성장의 모습을 '에바 부인'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한편으로 책은 유대인에 대한 특별한 언급도 거의 없기도 하고 독일인들의 반유대감정이 폭발하기 이전의 시대 상황을 보여주지만, 시대적으로 아주 조금씩 커져가던 반유대감정에 대해 작가가 느낀 것을 은은하게 묘사하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점차 이분법적으로 반유대감정이 커져가던 시대를 비판하듯 합일(合一)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3. 자아에 대한 회의감

주인공은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으로 묘사되는 세상에 드러나있는 '밝은 세상'이 전체가 아닌 반쪽짜리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자아에 회의감을 느껴, 스스로 밝은 세상 이면의 감춰지고 실재하지만 드러나 있지 않은 '어두운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성인이 되기 전이지만 술집에 드나들고, 학교에서 퇴학당할 위기에 처하고, 자주 어두운 밤거리를 배회하기도 하는 주인공의 행동에서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얻기 위한, 온전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누구나 한 번쯤 겪어야 할 고통을 단련하여 어두운 세상마저 품을 수 있는 합일(合一)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한 주인공의 고뇌를 보여준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한 번쯤 겪게 되는 자아성장과정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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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을 포함한 역사를 알기 전, 후 두 번 데미안을 읽게 되었다. 역사를 알지 못해도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데는 문제없었지만 세부적인 사항들에 집중할 수 없었고, 역사를 알게 된 후에야 등장인물들이 표현하는 감정적인 문구들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그들이 표현하는 시대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왜 그토록 고뇌할 수밖에 없었나. 그들이 말하는 동경과 이상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스무 살 초반 밤 12시 무렵이 되면 자주 동네 놀이터에 나가 맥주 한 캔과 세상을 논했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느꼈던 세상에 대한, 인생에 대한 회의감과 저들이 느꼈던 회의감 사이를 관통하는 시대를 막론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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