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날도 아레나스(Reinaldo Arenas) 저, 옮긴이 변선희, '현란한 세상', 1969
최초 작성일 2021.03.14
자유(自由):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freedom
너는 무엇 때문에 네 현재의 상태를 변화시키려고 하지? 네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 자유를 찾는 것이야말로 더 혹독한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 아니겠어? 네가 자유를 얻었다 해도 그것이 찾는 일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아니겠어? 그리고 더 나아가서 네가 갇혀 있다고 상상하는 바로 그 감옥보다도 더 끔찍한 것 아니겠어? - 책 中 주인공 '세르반도 수사'와 만난 '왕'의 말
어려서부터 책을 읽다 습관적으로 마음에 드는 문장을 형광펜으로 가두어 버리곤 한다. 글자들의 홍수 속에 조용히 자리매김하고 있던 한 문장의 평온한 휴식을 빼앗는 행위일까? 마치 인간을 감옥에 가두어 버리는 것처럼, 너는 나한테 중요하니까 그 어떤 문장보다 더 잘 보여야 한다는 이유로 판사봉을 내리치듯 형광펜으로 한 문장의 자유를 뺏어버린 듯 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은 그만큼 이 책이 주는 후유증에 크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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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세상'의 주인공인 세르반도 데 테레사 미에르 수사(이하 세르반도)는 모국인 멕시코의 종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연설을 하게 되고, 국가로부터 추방당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세르반도가 자신의 자유와 국가의 자유(독립)를 되찾겠다는 신념 하나로 끝없는 도망과 수감생활을 반복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끝내 세르반도는 도망자의 신분을 극복하고 스페인의 영향 하에 있던 멕시코의 자유를 이끌어내지만, 모순적이게도 본인의 자유는 없어졌다고 느끼게 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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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도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자유를 찾기 위한 그의 여정 속에서 그 어느 곳에도 귀속되지 않으려 하는 모습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멕시코 남색굴에서, 영국 귀부인들과의 관계에서, 프랑스 사제로서, 스페인 친구들로부터의 도망이 그렇다. 그런데 세르반도는 오히려 전신이 쇠사슬로 감겨 발가락조차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수감생활에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고, 결국 모순적이게도 자유를 얻었지만 자유를 잃어버린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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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레이날도는 이처럼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은 현실 즉, 육체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언정 정신적인 자유는 가질 수 없는, 혹은 그 반대인 모순적이고 희한한 세상을 '현란하게' 바라보았으며 그 표현을 바로크 시대의 문학 양식을 차용하면서 극대화시켰다. '현란한 세상'은 레이날도 본인의 세상에 대한 관점이 담긴 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그는 쿠바에서 태어나 반체제 인사라는 이유로 정권의 탄압에 시달렸으며 동성애자이기도 했다는 것으로부터 유추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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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자유를 원한다. 자유로운 것, 자유로운 시간, 자유로운 상태···. 그런데 우리는 자유로움의 극에 이르게 되면 일종의 심심함을 느끼게 되고, 끝내 무언가 할 일을 찾게 된다. 설령 그것이 잠을 자는 일이라고 할 지라도.
우리는 누구나 어떤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한다. 그것이 내 자유로운 상태의 가치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시시때때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에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알고있다. 작가 레이날도가 말하고자 하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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