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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8. '여행의 이유', 김영하

by 세자책봉 2021.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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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저, '여행의 이유', 2019

최초 작성일 2021.03.19

2021. 03. 06. 참치와 양념 육회, 테넷을 곁들인

역마살(驛馬煞):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에게 '역마살'이 끼었다고 한다. 사실, 이런 우리말은 없다.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백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 즉, 특별한 존재(Somebody)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Nobody)일 뿐이다. - 김영하

대학시절, 서울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몇몇의 친구들은 각자의 터전에 위치하게 되었고, 그중 가장 친한 형은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꽤나 멋있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카페에 놀러간 지난 여름날엔 형수와 세 명이서 술자리를 하게 되었는데, 요즘엔 사주를 공부하고 있다는 형수의 반진반농스러운 얘기에 문득 나의 사주가 궁금해져, 요구하는 몇 가지 출생정보를 일러주었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형에게 전화가 왔다. "니는 사주가 와이리 심란하노. 역마살이 세 개다 세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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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이 있다는, 그것도 아주 많이 있다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당황스러움도 잠시 그럴싸하다는 수긍을 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을 정말 좋아할뿐더러 2년 넘게 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궤적을 잠시 살펴보면, 중학교까지는 남자의 제2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논산대전에서, 고등학교는 백제의 고도 공주에서, 재수 시절은 경기도 용인에서, 대학생활은 서울에서, 취업준비는 경북 김천에서, 취업 후 2년은 충남 태안에서, 지금은 서산에서 지낸 지 3개월이 다 되어 간다. 특히 대학시절에도 남다른 여행 편력은 그 수준이 학생 신분을 뛰어넘었는데, 간단한 예로 부모님 나이 정도 되시는 어르신들보다 정동진에 더 많이 가봤을 것이다(대략 8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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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는 순수하게 여행을 가는 이유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특히 여행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내용이 그 주를 이루고 있다. 작가 본인이 여행했던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경험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던 삶의 본질 혹은 지혜에 대해 생생하게 표현했으며, 내용 중간중간 오디세우스 이야기 같은 적절한 문학적인 지식들을 첨가하여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움과 편안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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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는 작가의 글과 여행을 좋아하는 독자가 만나서인지 폭포처럼 시원하게 글을 소화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김영하 작가의 삶에도 여러 국가의 다양한 도시에 2년 정도 머물었던 적이 많았다고 쓰여있는 것을 보고, 그 역시 역마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확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서 편안한,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며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지에서 타국민들에게 도움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는 타국의 여행객들을 도와줬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비록 육체적인 거리가 멀지만 책이라는 매개채로 독자인 나에게 마음의 위로와 안정을 주는 걸 보니 당장이라도 여행을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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