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저, 옮긴이 전미연, '기억', 2020.05.30
최초 작성일 2021.02.07
내가 전생에 ㅁㅁ이였나?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아니면 적어도 누군가로부터 들어봤을 법한 말 '내가 전생에 A였나?', '너 전생에 B였니?'. 특수한 경험에 의해서 갑작스레 짜릿한 전기가 머릿속을 흐르는 사이 느껴지는 미묘함. 처음 하는 행동이지만 마치 이미 경험을 해 본 듯, 능숙한 듯, 아닌 듯 느껴지는 이상함. 혹자는 자신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쓰는 말 '내가 이렇게 하는 건 전생에 A였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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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주인공 '르네 톨레나도'는 우연한 계기(책을 읽어보면 꼭 우연이라고 볼 수 없기도 하다)로 최면 마술을 경험하게 되고 최면상태에서 자신의 전생을 경험하게 된다. 자기의식의 강한 '르네'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자유자재로 행할 수 있게 되며 전생의 다양한 '자신'과 조우하며 때로는 친구가 되고, 때로는 조언자가 되기도 하면서 최면을 통해 얻는 전생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아틀란티스'의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기억'은 베테랑 소설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위의 이야기를 그의 특유한 속도감 있는 진행으로 흡입력 있게 풀어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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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정신 그 이상의 세계(예를 들면, 전생, 사후 혹은 태초 등)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많은 듯하다. 그의 이전 작품들 신, 타나타노트, 제3인류 등을 본 독자라면 '기억' 역시 책의 내용을 이끌어가는 형태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과 타나토노트에서는 사후의 무언가와 소통을, 제3인류에서는 미래의 무언가와 소통을, '기억'에서는 전생의 무언가와 소통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또한 인류 역사학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김진명의 소설 '고구려'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인 듯 아닌 듯, 소설을 가장한 역사책인 듯 아닌 듯... 아마도 이와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역사를 내용으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밝혀지지 않은 역사 '아틀란티스'는 과거에 존재했지만 어떤 이유로 바닷속에 가라앉았다고 하는 전설의 섬이다. 플라톤의 「크리티아스」에 최초로 언급되었지만 그와 유사한 어떠한 기록도 찾을 수 없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류의 대표적인 미지의 역사를 전생 체험이라는 인간의 영역이 완전히 닿지 못한 미지의 방법으로 풀어내며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 어떤 역사학자도 이러한 방법에는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 첫 번째 전생인 '르네'에게 방주를 만들어 앞으로 있을 재해에 대비해야 한다고 일러주는 장면에서는 문득 과거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 행동은 미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굉장히 초현실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어벤저스 엔드게임'과 '테넷' 참고). 소설은 소설로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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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요즘, 하루하루 똑같은 반복적인 일상에서 '기억'을 통해 잠시 다른 공간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고등학교 이후 따로 시간 내고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던 것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주지 않고 현실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는데, 오래된 현실 집중으로 그만 마음에 빈 공간이 생겨버렸다. 그동안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여행을 다녀왔지만 코로나 시국으로 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비록 몸은 여행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은 여행할 수 있도록 당분간은 소설 위주로 책을 읽을 생각이다. 읽는 동안 정말 오랜만에 행복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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