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5. '개인적인 체험', Oe Kenzaburo(오에 겐자부로)

by 세자책봉 2021. 2. 16.
728x90

오에 겐자부로(Oe Kenzaburo) 저, 옮긴이 서은혜, '개인적인 체험', 1964

최초 작성일 2021.02.16

2021. 02. 05. 공주를 거닐다

눈앞에 마주한 현실, 지극히 개인적인

주인공인 버드는 태어날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아주 행복하고 편안한 현재의 생활이지만 무언가 빠져있다는 것을 느끼고 본인의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아프리카라는 이상향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의 가느다란 생명처럼 생존 가능성의 유무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장애를 가진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서 아프리카로 떠나기를 바라는 꿈은 떠나버린 항공편처럼 되어버렸다. 버드는 고집부리는 어린아이 마냥 그의 이상향은 이미 떠났지만 떠나보내기 싫어하면서 닥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게 된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를 얻게 된 한 가장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오에 겐자부로의 자전적 풍미가 짙은 소설이다. 실제로 오에 겐자부로의 첫 아이는 머리에 기형을 가진 채 태어나게 되었는데 오에는 그 누구도 느끼긴 어려운, 복잡한, 마음속의 동요를 경험하게 되며 그것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일련의 감정들은 그런 입장이 되었던 오에만이 겪을 수 있었던 것으로, 그렇기에 '개인적인 체험'이라는 타이틀은 참 잘 어울리기도 한다.

.

'개인적인 체험' 타이틀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냉소적인 태도가 현실세계의 것들과 닮아있기 때문에 더욱 극대화된다. 주인공을 잘 모르지만 단지 그가 생명을 경시하는 듯한 언행의 느낌을 풍겼다는 것만으로 그를 냉담하게 대하는 의사, 주인공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는 관심 없이 그가 교실에서 보여준 행동만으로 그를 판단해 멸시하는 학생들과 원장, 주인공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음에도 곤란한 일을 떠맏기는 친구... 이런 등장인물들의 태도에 역겨운 감정을 느끼면서도 마냥 잘못되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 별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

자신의 이상향을, 편안한 인생을 위해 장애를 가진 아이가 죽어버리길 바라면서도 선뜻 그 의사를 밖으로 내비칠 수 없었던 주인공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한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 포기하지 않는 상황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은 반드시 생명윤리를 저버린 인간의 깊은 내면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 각자의 특수하거나 특별한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각자만의 개인적인 체험으로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물음이 아닐까 싶다. 물론 생명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주의 깊게, 예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오에 역시 그만의 개인적인 체험을 겪으며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했으리라고 본다. 마지막에 보여주는 주인공의 행동으로 유추하건대, 오에는 태어난 생명을 최대한 존중하기로 마음먹었으며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리라고 짐작된다.(실제 잘 키웠다고 한다.)

.

오에 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은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전적 소설이다. 책은 장애아 출생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주제로 다루지만 그와 별개로, 다양한 상황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인간 내면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또 현실적으로 잘 묘사했다. 특히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비유와 은유를 사용하는 작가 특유의 문체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의 집중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고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해 주었다. 교양 깊은 누나로부터 추천받은 책 '개인적인 체험'. 개인적으로 대만족.

.

.

근래 나만의 '개인적인 체험'을 하다 보니 조금은 염세주의적인 표현일 수도 있지만, 과연 나를 진정으로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상대방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머릿속 한구석에 자리 잡게 되었다. 몇 해전 나의 직장 상사는 나를 비롯한 직장 동료들에게 심한 폭언을 했었었고, 이것이 몇 년간 지속되어 왔음을 알게 된 나는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트리기 위해 정면으로 맞부딪혔던 적이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이를 아무런 조치도 없이 방치했던 주변 사람들이 너무나도 경멸스러웠고 이때부터 인간 존재에 대한 혐오를 느끼게 되었다. 그 문제를 공론화시킨 후 처음 들었던 말, "꼭 그렇게 외부적으로 문제를 터트렸어야 했어?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어?". 상사로부터 피해를 입고 있는 동료를 보고 있지만 본인이 직접적으로 그 피해를 겪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저 관심 없이 방치했어 왔지만, 문제가 커지니 그동안 방치했었던 본인에게 피해가 생길까 두려워 내뱉었던 그들의 헛소리들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는 이런 나만의 경험을 통해 상대방은 나를 이해하는 척 공감하는 척 하지만 사실 나에게 별로 큰 관심이 없는 존재들이라고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되었고, 누구보다도 더 '개인적인 체험'이라는 타이틀이 의미하는 바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