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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34. '어둠의 정면', 윤지이

by 세자책봉 2022.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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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정면', 윤지이 저, 2021, 도서출판 델피노
최초 작성일 2022.01.12

2022. 01. 16. 어둡게 찍어보고 싶었지만 갤럭시 S10 카메라로는 색감을 잡기 어려웠다.

혼수상태(昏睡狀態): 의식을 잃고 인사불성이 되는 일. 의식 장애 가운데 가장 심한 것으로, 부르거나 뒤흔들어 깨워도 정신을 차릴 수 없고 외계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반사 작용도 거의 없다. 약물을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혼수상태를 유도할 수도 있는데, 이런 부류의 혼수상태를 인위적 혼수상태라 한다.
처음 소년이 나를 찾은 건 한창 약을 입에 털어 넣던 무렵이었다. 본과 시절부터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한 나는 얼마 못 가 약 없이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십 대 초반, 그 혈기왕성한 시절, 내가 주체할 수 없었던 건 그 무엇도 아닌 죽음에 대한 충동이었다. 죽음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 나는 그 힘겨운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삶에 실망을 느끼고 있거나 한 건 아니었다. 죽음에 대한 나의 충동은 삶에 대한 불만이나 좌절, 슬픔 이전에 존재하는 하나의 욕구이고 본능이었다. 그건 식욕이나 성욕과 다를 바가 없었다. 거기엔 옳고 그름 같은 것이 없고 어떻게든 채워지길 기다리는 욕망만이 있었다. 그리고 내 곁엔 약이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약 몇 알이면 나는 금세 온전하고 행복해졌다.
- '어둠의 정면' 소년 中,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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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라는 놈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바쁜 것 같다. 오늘도 이 땅에 태어난 나약한 생명들이 살기 위해 스스로 그어버린 국경이나 대륙을 지나야 하는 지리적인 한계를 너머 그 어떤 신분,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제멋대로 고른 수많은 인간들과 조우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도 분기에 한 번쯤은 그놈과 조우하는 일이 있는데, 일정한 주기나 정해진 시간에 찾아왔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것을 보면 '그놈은 성격이 참 지랄 맞다.' 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다행히도 지난 10월에 찾아와 제야의 종을 타종하듯 마음을 울리던 그놈은 겨울이 한창인 1월에 오피스텔 15층 창가에서 노트북의 불빛에 의지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까지도 찾아오지 않고 있는데, 어릴 적 산타클로스를 만나지 못한 것에 느끼던 아쉬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면 그놈에게 한 편의 아쉬움이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난번의 만남에서도 해결할 수 없어 묻어두어야 했던 여러 가지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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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고독이 찾아왔던 순간을 되짚어보면 줄곧 '고독하다. 고독하다.' 했지만 실은 '우울하다. 우울하다'를 외치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 대한 물음에 온 몸을 무겁게 짓누르던 고독감을 깨부술 만큼 강렬하고 명쾌한 대답을 찾아내지 못하면서 생긴 반동으로 고독이 스멀스멀 우울로 변질되었던 탓이다. 특히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느끼는 외로움에 감정 이입하게 되는 순간, 다시 말해 제 아무리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친구라고 할지라도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엔 세상과 나는 철저하게 분리되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우울감이 나를 찾아왔었다. 그나마 이제는 고독과 우울은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고독일 수도, 우울일 수도, 또는 두 가지 감정이 혼합되어 느껴질 수 있을 만큼 둘은 가까운 이웃 관계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것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 되어버릴 정도로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을 다시 한번 굳이 재차 느끼고 싶지는 않은 것이 작금의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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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가벼운 우울감 정도야 일상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우울로 변질된 고독이라는 놈은 어찌나 치명적인지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흔들리게 한다는 것이다. 세상과의 단절감에 진정 혼자가 된 나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층 더 깊은 우울로 빠져들게 되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 따위 신경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음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된다. 고립은 자아를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이끈다. 무자비하게 이끌려가는 상황에 발버둥 쳐보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보지만 적당한 대답을 찾아내지 못한다.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어느덧 자아는 죽음의 경계선에 내몰리고, 의식의 흐름은 죽음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한다. 이쯤 되면 나는 '나'가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지, '나'는 왜 존재하는지, '나'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 결국 깊이 파고들어 갈수록 강렬해지는 한없이 초라한 존재임에 대한 고통을 죽음으로써 회피하고자 하고, 심지어 누군가는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우울로 변질된 고독이라는 놈은 이토록 위험하다. 마치 보이스피싱처럼 무작위적으로 인간에게 파고들어 끝내 죽음을 요구한다. 하지만 보이스피싱과 달리 인간은 이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저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마주할 뿐이다. 그리고 여기, 이를 정면으로 마주한 한 명의 작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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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어둠의 정면'은 윤지이 작가님이 쓴 소설이다. 책은 제목과 어울리게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의 내용이 담겨 있는데, 앞서 언급한 고독과 우울에 맞서는 인물들의 -주인공은 남편인 듯 하나, 아내 또한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굳이 '인물들'로 표현했다-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한 문장 한 문장에 녹아있는 내용이 깊은 탓에 세 번이나 책을 읽었다. 두 번째부터 이해가 되기 시작하니, 겨우 리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론 책을 제공받은 것에 괜스레 낱낱이 해부하고 분석해야겠다는 편협한 심리 상태가 한 몫해 이해를 방해한 듯싶다. 어쨌거나 몇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을 -특히 아내의 메이트 관계의 이중성, 아내의 시선에서 그런 관계가 정당하다면 애초에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등- 제외하고는 작가님이 심어놓은 다양한 장치들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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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편이 숨겨놓은 약을 모조리 먹고 인위적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익히 알고 있듯 겨울이 되면 곰들은 동면에 들어가게 된다. 추운 날씨와 배고픔을 견뎌내기 위해, 다시 말하면 살기 위해 현실의 움직임을 최소화한 상태를 유지한다. 같은 맥락으로 아내가 스스로 혼수상태에 들어가는 것은 현실의 움직임에 족쇄를 채우는 행위지만, 현실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좋은 기억이 담긴 특정 시간의 굴레에 갇히고자 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녀 또한 살기 위해 동면에 들어간 것이다. 그녀가 느끼기에 스스로 꿈속으로 들어가 깨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할 만큼 현실은 고통스러웠으리라. 책의 말미에 적혀있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작가님은 언젠가 죽음이 하나의 꿈이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작가님의 꿈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고, 글로써 그리고 책으로 대체되어 표출되었다는 것에 심심한 안도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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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담긴 고독, 우울 그리고 죽음이 주는 메시지는 결국 우리는 이런 것들을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서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태어나면서부터 풍부한 감성 탓이든 성장하며 겪은 특별한 경험으로부터 기인하든 우리네 삶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이라는 것엔 변함이 없다. 누구에게나 고독은 찾아오고, 누구나 우울함을 느끼곤 한다. 또 누구나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각자 '나'라는 훌륭한 귀납적 근거가 있음에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경험들'이다. 그렇기에 책 '어둠의 정면'이 조금은 어둡고 깊은 이야기임에도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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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타인이 되는 것. 그녀가 바라는 건 그런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녀를 향한 나의 무한한 이해, 그건 절대적이어야 했다. 아내는 아직 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로 비롯된 오해와 불신으로 그녀가 밉지만, 그녀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 아내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든 그녀에게 무한한 이해와 배려를 재차 다짐하는 남편. 아내를 향한 애틋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문장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이런 것인가. 앞서 나는 아내가 애초에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의문을 표했음에도, 그녀가 결혼을 하게 된 이유에 대단한 포용력을 지닌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면 그녀의 태도가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가 있었기에 '어둠의 정면'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 정도면 꽤나 잘 버틴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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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각자의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던 그들에게 '어둠'은 그들의 길을 막을만한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들이 함께 견뎌낸 '어둠'은 비 온 뒤 땅이 굳듯 서로를 더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고 마침내 그들은 더 먼 곳까지 함께 갈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결혼하면 살기 힘들어진다고, 그래서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라고.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결혼을 하면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 있다고, 그래서 결혼을 하라고. 그들을 보며 오늘도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자꾸만 오버랩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밤이다.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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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에 활용된 책 '어둠의 정면'은 윤지이 작가님으로부터 제공받았다는 것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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