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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전쟁은 과연 예정된 것일까? <예정된 전쟁>

by 세자책봉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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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미-중 전쟁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과 불신, 딜레마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시각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예정된 전쟁>

2022. 10. 10. 지리산 천왕봉 등반 후 요양하는 중, 맥주가 왜 이렇게 마시고 싶은 건지

차례

1부. 중국의 부상
2부. 역사의 교훈
3부. 폭풍 전야
4부. 전쟁은 필연적이지 않다


저자 소개


지은이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경제학 석사학위,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1989년까지 하버드 케네디스쿨 학장직을 맡으면서 수많은 석학과 정계 인물들을 배출하는 세계 최고의 정치행정대학원으로 키워놓았다. 그 후 1995년부터 2017년까지 하버드대학교의 벨퍼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국가 안보 및 국방 정책 분석가로, 특히 핵확산과 테러리즘, 그리고 정책 입안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레이건과 클린턴 정부 하에서 국방장관 특보, 국방부 차관보를 지내면서 미 국방부에서 주는 공로훈장인 최고시민 훈장을 두 차례나 받았다. 여러 국방장관의 정책자문위원으로 일한 바 있으며 현재 국무장관, 국방 장관, CIA 국장의 자문위원직을 맡고 있다. 또한 국제원자력기구 위원회, 대량살상무기 확산 및 테러 방지 위원회 등 각종 공공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첫 책 <결정의 에센스>는 출간된 이래로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라 45만 부 이상 팔렸고, 2013년에 로버트 블랙윌과 함께 슨 책 <리콴유가 말하다> 역시 미국과 해외 각국의 베스트셀러가 된 바 있다. <핵테러리즘>은 뉴욕타임스 선정 2004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예정된 전쟁>은 출간되자마자 전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는 거대한 전쟁이 일어났다. 에게해를 지배하던 가장 거대한 두 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전쟁,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본디 양국은 페르시아 전쟁을 함께 치른 동맹국이었다. 당시 스파르타는 영화 <300>에서 묘사된 것처럼, 죽음을 불사하는 강력한 육군을 바탕으로 그리스 지역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였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스파르타 홀로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의 영토에 비해 작은 도시국가였으며, 주요 병종이 해군보다 육군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테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아테네는 육지로도 페르시아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주변 도시국가들과 올리브유를 비롯 각종 무역으로 성장하던 아테네는 오히려 육군보다 해군이 강력했다. 결국 그리스 지역의 도시국가들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필두로 연합을 형성하게 된다. 300명으로 구성된 스파르타의 정예군은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목숨을 바쳤고, 아테네 사령관을 필두로 한 연합군 함대는 3분의 1에 불과한 병력으로 페르시아 함대를 물리쳤다. 이후로도 페르시아는 한 차례 더 침략을 감행하지만 스파르타의 강력한 중장보병과 아테네의 빠른 함선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그리스 연합군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는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아테네는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에게해의 바다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었고, 주변 국가들과 해상 무역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무역을 통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자 문화적으로도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유럽 전역으로 헬레니즘 문화가 퍼졌다.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 아테네와 무역을 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무역로를 지킬 해군 병력을 꾸준히 증강해야 했다. 이때 아테네는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군사적으로 주변 도시 국가들을 앞질렀고 기존의 지배세력인 스파르타를 위협할 정도로 세를 키우며 본격 신흥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무엇보다 아테네인들은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하는 데 자신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아테네가 그리스를 이끄는 주요 세력으로 인정받길 원했다. 이에 스파르타는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간 신흥세력이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마저 앞지르게 될 것이며, 자국의 지위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전쟁을 치를 단계는 아니었다. 스파르타의 동맹은 여전히 굳건했고, 동맹국들의 힘을 다 합치면 아테네의 두 배를 넘는 군사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주도권은 스파르타에 있었다. 스파르타는 외교 책으로 대응했다. 아테네와 그리스가 맺은 30년 평화조약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외교책은 실질적 효용이 떨어졌고, 오히려 양국의 긴장감만 늘어갈 뿐이었다.

한동안 계속되던 신흥세력과 기존 세력의 구조적인 긴장감은 동맹국 사이의 전쟁을 촉매로 발화했다. 스파르타의 주요 동맹국인 코린토스가 아테네의 동맹국인 코르키라와 전쟁을 벌이기 시작하면서다. 코르키라는 동맹국인 아테네에 도움을 요청했고, 아테네는 코린토스의 행동이 스파르타와 연관된 다분히 의도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판단에 전략적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만약 코르키라에 군사를 파견한다면, 코린토스뿐만 아니라 스파르타를 적으로 만드는 것이고 이것은 곧 30년 평화조약을 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스파르타와 전면전을 의미했다. 이러한 상황에 스파르타 또한 전략적 딜레마에 빠졌다. 만약 스파르타가 동맹국인 코린토스를 돕게 되면 아테네와 전쟁을 하게 될 것이고, 중립을 지킨다면 스파르타는 다른 동맹국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되어 지배세력으로써의 입지가 흔들릴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3국 사이의 전쟁으로 양국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했다. 친구였던 스파르타의 왕 아르키다모스와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발달했던 두 도시국가에서 아무리 지도자라 할지라도 개인의 영향력이 집단의 판단을 좌우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미 아테네인들은 자국이 이뤄낸 성장으로 오만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고, 지배세력이 되길 희망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입지를 증명받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다. 스파르타인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테네가 더욱 성장하기 전에 미리 싹을 잘라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두려웠다. 스파르타의 동맹국들의 세력이 점점 약해져 만가고, 주변 국가들을 향한 아테네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두 지도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파 의견이 주를 이룬 양 국가의 의회는 전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시작됐다.

전쟁은 참혹했다. 30년 평화조약은 무용지물이 되고, 군사적 충돌만이 서로의 유일한 대답이 될 뿐이었다. 약 30년 동안의 긴 전쟁 끝에 승리를 가져간 건 스파르타였다. 그러나 승전국과 패전국 모두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막심한 상황. 양국은 더 이상 이전처럼 그리스를 선도할 수 없었다. 인구는 급감했고, 동맹은 무너졌다. 유럽을 휩쓸던 그리스 문화는 더 이상 예전처럼 찬란하지도, 세계를 이끌어나갈 힘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자국의 국내 정치에 휘말려 서로에게 이끌리듯 시작된 전쟁의 결과는 처참했다. 양국이 전쟁을 통해 얻은 것은 노예도, 전리품도, 영토도 아니었다. 양국은 공멸했다. 서로 공멸하기 위해 전쟁을 한 것인가. 대체 무엇을 위해 전쟁을 시작했던가 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듯 그들에게는 공멸이라는 결과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인정받고 싶었다. 해상 무역으로 비롯된 경제적 선순환은 헬레니즘 문화의 기반이 되었고, 더욱 강력한 군대를 필요로 했다. 자연스레 주변국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도 늘어갔다. 헬레니즘 문화는 유럽 전역을 휩쓸었고, 이를 접한 세계 곳곳에서는 아테네를 제 발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테네인들은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그들은 때로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에 반해 스파르타인은 두려웠다. 아테네의 무서운 성장세가 지속되면서 스파르타 동맹은 점차 느슨해졌고, 주변 국가들에 대한 스파르타의 영향력 또한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차했다간 눈 뜨고 코 베일 수도 있는 상황. 자국의 지위를 공고히 해야 하는 스파르타는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이렇게 전쟁을 향한 스노우볼은 굴러가기 시작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일련의 과정들은 아테네인이자 역사가인 투키디데스에 의해 기록으로 남겨졌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스 전쟁사>가 바로 그것이다. 투키디데스는 역사를 오직 사실에 기반하여 기록한 최초의 역사가였다. 구체적인 정황은 물론, 복잡한 사건들 뒤에 얽힌 근본 원인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가 남긴 기록이 오늘날까지도 고전으로 손꼽히는 이유이며, 전 세계 대학교를 비롯 여러 연구의 토대가 되는 이유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입부에서 얘기하듯, 그가 전쟁을 기록한 목적은 후세 사람들이 이걸 보고 선대에서 저지른 실수를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의 역사 기록이 미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고자 과거에 관해서 정확한 지식을 얻으려는 사람들로부터 유용한 도구라고 인정받는다면, 미래가 과거를 그대로 비추지는 않더라도 인간사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기에 만족스러울 것 같다 - 투키디데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 세력이 지배 세력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위협을 할 때 발생하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혼란 상황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리스의 두 세력이 몰락한 이후 2,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현상은 세계의 질서를 만들어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그리고 오늘날 G2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두 국가 간의 관계 역시 이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세계 질서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브레튼 우즈 체제 이후 세계 질서는 미국의 주도 하에 정리가 되는 듯했지만, 인구 14억 명의 중국의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전 세계의 중국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다. 다시 말해, 세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AIIB(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ck) 창설, BRICS(Brazil, Russia, India, China, South Africa) 경제 협력 강화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외에도 중국은 서구(특히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벗어나 아시아 중심의 세계 질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세계를 향한 미국의 영향력은 미세하지만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또한 동맹국과의 관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쟁국들의 도발로 미국의 여러 동맹국들이 국가의 존망에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우디아라비아 문제, 대만 문제 그리고 한반도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최근엔 사우디아라비아가 속해있는 연합체인 OPEC+가 석유 생산량을 하루에 약 200만 배럴 감산하겠다고 결정하면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동맹이 더욱 흔들리고 있기도 하다.

압도적인 경제적 성장은 중국을 미국의 최대 정치적, 군사적 경쟁국으로 이끌었다. 마치 과거 아테네가 스파르타의 경쟁국이 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아직은 미국이 중국보다 군사력이나 첨단기술력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 그러나 자국이 경제적 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몸소 겪은 중국인들에게 두려운 것은 없다. 그들 앞에 놓인 과제는 해결하면 될 것이고, 그들이 해결하지 못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직 부족한 군사력은 서서히 늘려가면 되고, 나머지는 주변 국가들과 강력한 동맹을 맺는 것으로 메꾸면 된다. 기술력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인력과 자금력을 집중 투입시켜 개발하면 된다. 결국 이 게임에서 시간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유리하다는 사실을 중국은 알고 있다. 중국인들은 중국이 과거 세계의 중심이었던 지위를 되찾고, 세계에서 인정받는 국가가 되길 원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차고 올라오는 중국이 서서히 두려워지는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중국이 꿈틀거릴 때마다 가소로운 듯 지켜보거나 애써 무시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이 만들어낸 새로운 구도는 미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동맹국들마저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중국을 향해 직접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중국을 향한 관세 보복이 그 첫 시작을 알렸다. 이에 중국 역시 미국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매기며 양국의 무역전쟁이 시작되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낸시 팰로시 미국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을 두고 미중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는데, 미국은 민주국가이며 주요 동맹국인 대만을 지키겠다며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이 방어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당연히 중국은 이에 크게 분노했지만, 다행히 군사적 충돌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저녁,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으로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본격적으로 기술패권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미국은 현재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전쟁을 향한 미국과 중국의 스노우볼은 굴러가기 시작했다. 혹자는 지금이 미소 냉전시대에 버금가는 신냉전시대라고 칭한다. 그만큼 미중 갈등이 심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과연 미국과 중국의 전쟁은 예정된 것일까? 전쟁을 반드시 치를 수밖에 없을까? 전쟁을 치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물론, 앞으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지의 여부는 각국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특정 책임 소재를 논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합적인 여러 지배적이고 피지배적인 요인들로 결정되는 것으로, 결코 단순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에 미국의 대표적인 국가 안보 및 국방 정책 분석가인 그레이엄 앨리슨은 오늘날의 상황과 유사한 역사로부터 해답을 찾고자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부터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졌던 여러 역사적 사건이 담겨있는 그레이엄 앨리슨의 책 <예정된 전쟁>은 우리 시대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최선의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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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 독일의 힘겨루기 < 제1차 세계 대전 >


1911년 10월 24일, 서른일곱의 한 정치 신동이 영국 해군 전체를 책임지는 해군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장관을 맡은 지 4일째 되던 날, 처칠은 동료 장관들에게 각자가 맡고 있는 중요한 책임을 상기 키시는 메모를 하나 보낸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시대의 경고를 떠올리는 글이었다. 1911년에는 이미 발생 가능한 위험이 임박해 있었다. 바로 독일의 군사력 증강이었다. 특히 독일의 함대 규모는 지난 10년 사이에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다. 이 위험에 대처할 최선의 보편적인 방법은 분명했다. 바로 영국 해군 전력의 우월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가 메모를 보낸 때와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사이의 1,000일 동안 처칠은 영국 해군의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영국은 극심한 딜레마에 직면했다. 독일이 지배적인 해군을 만들거나 다른 유럽 경쟁국들을 압도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영국의 시도는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일어난 어떤 전쟁보다도 끔찍한 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인들이 자신들이 전략적 딜레마 상황을 종말론적으로 생각한 것은 옳았다. 1918년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세계는 정말로 폐허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전쟁은 무지보다는 판단 착오가 가져온 파국이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전쟁이 그들의 사회질서와 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려놓을 수 있다는 경고를 충분히 들었다. 하지만 힘의 우위를 놓치지 않기 위한 지나치게 합리적인 노력이 구조적 긴장이라는 조건을 낳았다.

문명의 충돌 < 미국 대 중국 >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포린 어페어스 Foreign Affairs>를 통해 문명의 충돌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그는 문명을 가장 광범위한 수준의 문화 조직들을 구성하는 집합체로 정의했다.

문명은 사람들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각 문화 집단으로 나눈 것이고,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이 지닌 가장 광범위한 수준의 문화적 정체성이다 - 새뮤얼 헌팅턴


그에 따르면, 중국과 미국 나라의 역사적 괴리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 가치 전통이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고 이는 세력의 화합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지 예로, 헌팅턴은 수천 년간 존재해온 사회의 일원인 중국은 서양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척도의 시간 속에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중국인들은 그들 사회의 발전을 수백, 수천 년이라는 시간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장기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데 방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인들은 지금 당장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문화적 성향의 광범위한 차이가 어떻게 대결로 옮겨갈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미국과 중국이 정부의 본질과 목적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지금 미국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대중국 전략이 아니라, 일단 멈춰 서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만약 중국의 부상으로 야기된 구조적 변화가 정말로 투키디데스적인 딜레마 상황에 가까울 정도로 깊숙이 진행된 것이라면, 미국이 더 강력한 혹은 강경한 방향으로 태도를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는 암을 이기려고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것과 같다. 14억 인구에 5,000년 역사를 지닌 문명이 극적인 부활을 하고 있는 마당에 적당한 해결책이란 게 있을 수 없다. 이런 도전에 상응하는 전략을 만들어내려면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네 가지의 가능한 전략적 선택지는 아래와 같다. 먼저 중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협상을 하는 것이다. 절대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수용은 그것 나름대로 달갑지 않은 흐름을 제어하는 데 군사적 수단에 의존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다. 이를테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양보를 받아내는 대가로 타이완에 대한 약속을 축소할 수 있는가? 와 같은 것이다. 두 번째는, 나라 안에서 체제 변화가 일어나도록 조장하거나 나라를 분열시키는 것이다. 중국에는 이미 균열이 나 있다. 티베트와 신장, 홍콩 그리고 타이완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중국 내부를 분열시켜서 베이징의 이목을 집중시킨다면, 어쩌면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막거나 적어도 상당 기간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장기 평화를 위한 협상을 하는 것이다. 기원전 455년 페리클레스가 스파르타인들과 맺은 30년 평화조약부터 1970년의 미-소 데탕트에 이르기까지, 역사상의 경쟁국들은 보다 긴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 특히 자국 내의 문제들에 집중하기 위해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방법을 활용했다. 마지막 네 번째 전략적 선택지는 미국과 중국이 다시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함께 서로의 핵심 국가이익을 존중하는 신형 대국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관계의 목적은 전쟁을 피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양국은 핵전쟁, 핵 무정부 상태, 세계적인 차원의 테러리즘 그리고 기후변화처럼 양국이 모두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범지구적 또는 탈지구적 도전에 맞서 싸우는 것을 명분으로 전쟁을 피하고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며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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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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