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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라는 구멍을 메워야할 시기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by 세자책봉 2025.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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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미국 경제학자들의 연구 방법에 전적으로 확신을 갖지 못했다. 확실히 그들은 모두 대단히 총명하고 나에게는 아직도 그때 사귄 친구가 많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세계 경제 문제들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쿠즈네츠 이후 불평등의 동학에 관한 역사적 데이터를 모으는 의미 있는 노력이 전혀 없었으며, 그런데도 학계는 어떤 사실들이 설명되어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순전히 이론적인 결과들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금세 깨달았다.
- 본문 중에서

최근 경제학계를 넘어서는 경제사의 쾌거이며 지적인 역작
향후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경제학 저서로 자리매김할 책

<21세기 자본>


차례

  • 제1부 소득과 자본
  • 제2부 자본/소득 비율의 동학
  • 제3부 불평등의 구조
  • 제4부 21세기의 자본 규제

저자 소개

 

작가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경제적 불평등에 내재한 자본주의의 동학을 분석하고, 글로벌 자본세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 <21세기 자본>으로 일약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떠오른 프랑스의 소장 경제학자. 1971년 프랑스 파리 인근의 클리시에서 태어나, 프랑스 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공부한 뒤 22세에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과 런던 정경대에서 부의 재분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993년부터 3년간 MIT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으며, 1995년 프랑스로 돌아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2000년부터 파리경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자본과 이데올로기>, <피케티의 신자본론>, <20세기 프랑스의 고소득>, <세금혁명>, <새로운 연금제도에 관하여>, <20세기의 최상위 소득> 등이 있다. 2013년에는 이론과 응용 연구 측면에서 유럽 경제 연구에 탁월한 기여를 한 45세 이하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이리에 얀손' 상을 수상했다. 

 


우리 사회의 자본 구조와 부의 분배, 그리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 프랑스 경제학과 교수 토마 피케티의 책 <21세기 자본>이다. 일단, 이야기에 앞서 본 책은 장장 800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벽돌책임을 미리 밝혀둔다. 결코 무기로 쓰지 마시라. 사람 다친다.

 

책 <21세기 자본>에는 페이지 수만큼이나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가 담겨 있다. 그리고 수많은 정보들을 하나로 종합해 보면 튀어나오는 단어는 단연코 '불평등'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평등이란, 정치사회적 구조가 만들어 낸 계급에 대한 불평등이라기보다, 오로지 부의 분배에 의한 즉, '부의 불평등 분배로 인해 야기된 사회적 불평등'이다. 작가의 집필 의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의 불평등 분배로부터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찾고, 그 심화 과정에 대한 메커니즘을 밝히면서 더 나아가 앞으로 맞이할 21세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 책의 주를 이루고 있다.

 

세상의 수많은 자본은 시대에 따라 그 중요성과 가치가 달라져 왔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최고의 자본이었고, 산업혁명 시기에는 기계와 공장이 최고의 자본이었다. 그리고 오늘날은 도심지 주택이나 주식 등이 최고의 자본이 되었다. 그런데 작가의 통계에 따르면 이 같은 자본 가치 순위의 변화가 가장 급격하게 일어난 건 1920 ~ 1950년대다. 왜 그럴까? 이 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그 주인공은 바로 제1, 2차 세계대전이다.

 

제1, 2차 세계대전은 전쟁의 규모나 양상 모두에서 우리 시대 최악의 참사라 할 수 있다. 무차별적인 살상과 폭력, 인간 윤리와 자본을 통째로 갈아 넣은 이 전쟁은, 민간인을 포함해 최소 5천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낳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건이었다. 그야말로 전쟁이라는 탈을 쓴, 인류 스스로를 향한 반자멸 행위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도시가 폐허가 되었고, 그만큼 수많은 전쟁 난민이 생겨났다. 그렇게 찬란하던 인류 문명의 시대는 성장의 궤도에서 한 차례 꺾였고, 모든 것을 바닥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 했다.

 

하지만 인류라는 종의 성질은, 참호 위에 돋은 잡초가 아무리 군화에 짓밟혀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가듯 강인했다. 원자폭탄이 터진 뒤 진공 상태를 메우려 들이치는 대기처럼, 인류는 금세 파괴된 것들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단단하고 찬란한 문명의 새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1945년 이후 전후 복구의 시기, 인류는 마치 전쟁이 없었던 것처럼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또 한 번 자본이 크게 출렁였던 사건이 있다. 바로 금융위기다. 금융위기는 전쟁과 달리 대규모 유혈사태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세계화로 인한 글로벌 경제 체제 때문이었다. 1944년 브레튼 우즈 협정 이후 미국의 주도 하에 세계는 본격적으로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계경제시스템, 특히 금융 시스템은 세계를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복잡하게 엮였다. 그런데 실상은 거미줄이 아니라 솜사탕으로 만든 줄이었다는 게 금융위기를 통해 밝혀졌다. 눈에 띄지 않던 부채의 압력이 세계를 엮어 놓았던 금융 커넥션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것이다. 그렇게 결국 세계 금융은 대규모 마비를 경험해야 했다.

 

양차 세계대전 그리고 금융위기. 이 둘의 공통점은 뭘까? 기존 사회가 만든 부의 형태를 완전히 뒤바꿀 만큼 강력한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백만장자가 하루아침에 거지꼴로 전락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지만 상당 수의 부유층이 몰락하고 신흥세력이 등장하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다시 말해, 경제 성장의 새로운 장(Agora)이 열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는 결코 낯선 일이 아니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성장과 쇠퇴를 반복해 왔고, 기회는 언제나 부흥기 속에서 더 활발하게 열렸다.


문제는 이러한 굵직한 사건들을 겪은 뒤에도 세계가 다시 심각한 불균형의 늪에 빠졌다는 점이다. 양차 세계대전과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자본의 분배는 재편되었지만, 전후 복구시대를 지나 모두가 잘 살게 될 것만 같던 세상은 결국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자본 수익의 복리 효과에 따라 다시 불균형해졌다. 한때 두터웠던 중산층은 점점 아래로 밀려났고, 소수만이 상위 계층으로 올라갔다. 그 결과 전 세계의 부의 대부분은 상위 10%, 그중에서도 최상위 1%에게 집중되었다. 작가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대 미국에서는 상위 10%가 인구가 전체 부의 70%를, 상위 1%가 그중 3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부의 쏠림 현상을 가속시킨 데에는 각국 정부의 대응도 한몫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은 대형 금융투자회사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세금을 투입해 그들의 파산을 막았다. 평범한 시민들의 자산은 속절없이 사라진 반면, 부유층의 자산은 국가의 개입으로 지켜진 셈이었다. 2020년 코로나발 금융위기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와 달리, 2020년의 위기는 내수경제 부진에서 비롯된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세계 각국은 초저금리 정책과 양적완화를 통해 추락하던 경제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세계 증시는 이례적인 대호황을 맞이했고, 종국에는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에도 자유시장경제 논리라면 도태됐어야 할 수많은 기업들이 국가의 개입으로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로 인해 풀린 자금의 대부분은 규모의 경제와 복리 효과에 의해 결국 부유층의 손에 들어갔다.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식 역시 주목할 만하다. 현대의 전쟁 양상은 과거 적벽으로 향한 조조의 수군이나 중공군의 인해전술처럼 수적 우세에 의존했던 재래식 방식과는 달리, 정밀한 미사일 한 발이나 항공모함 한 대로 승패가 갈릴만큼 기술 중심으로 변화했다. 그만큼 기술의 중요성이 커졌고, 사회 전반이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즉시 기술 개발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전통적인 관리 능력에 초점을 맞췄던 CEO보다 지식과 기술 역량이 뛰어난 기업가를 선호하게 되었다. 기업들은 이들을 영입하기 위해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상위 계층으로 떠오르며, 일반 직장인보다 수 배에서 많게는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부를 손에 넣고 있는 현실이다. 구글에 미국 대기업 CEO 연봉을 검색해 보면, 이러한 격차가 얼마나 심화되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능력주의는 분명 불평등을 가속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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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삶으로 돌아와 보자.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자유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부의 불평등이 아무리 심화되더라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오로지 시장의 판단에 맡기는 게 옳을까? 그렇지 않다면, 이미 국가가 시장에 개입을 했듯 앞으로도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까?

 

사실 이 두 가지 접근법을 따로 논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는 없다. 이미 전 세계는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경제적 개입주의'로 돌아선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에 기반한 자유시장경제와 사회주의 체제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의 선택에 따라, 세계는 아랍권에서 '아랍의 봄'이 번졌듯 사회주의가 확산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길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균형을 이룰 때 가장 아름답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위기가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양차 세계대전이 초래한 부의 재분배를 긍정적인 효과로 평가하며, 지난 80여 년간 대규모 전쟁이 없었다는 이유로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그래도, 살생보다는 국가의 개입을 통해 부를 재분배하는 편이 훨씬 나은 선택이다.

 

작가는 부의 불평등 심화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두 가지 주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첫째는 누진적 자본세 도입, 둘째는 조세회피처에 대한 감시 강화다. 먼저 누진적 자본세는 말 그대로, 소득이나 자산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다. 작가는 지금까지 오히려 부유층에게 역진적으로 세금이 부과되어 왔다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이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핵심은 세수를 어떻게 늘리느냐는 점이다. 예를 들어, 1만 원을 가진 사람과 1억 원을 가진 사람에게 동일하게 5%의 세율을 적용한다고 가정하면, 각각 500원과 500만 원의 세금을 내게 된다. 결국 아무리 저소득층에게서 세금을 많이 거두려 해도, 부유층이 낼 수 있는 세금 규모에는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국가는 부유층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두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함으로써 불평등 완화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조세회피처에 대한 감시 강화는 탈세 문제와 직결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세계 각국에 다국적 기업을 설립한 글로벌 기업들은 세율이 가장 낮은 국가로 이익을 몰아 세금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수익에 대해 20%의 세율이 적용되고, 일본에서는 10%가 적용된다고 할 때,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수익을 줄이고 일본에서의 수익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조작해 더 낮은 세율을 적용받으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주로 기업에 해당하지만, 부유한 개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실제로 비트코인 가격의 급등 역시, 탈세나 국가 간 세금 회피 수단으로의 수요 증가가 주요 요인이라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국가 간 은행 정보의 자동 전송 시스템을 구축하고, 탈세 의혹에 대한 신고 체계를 정비함으로써 각국이 정당한 세금을 거둘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즘 자주 들리는 유행어 중 하나가 ‘비정상의 정상화’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정상화하자는 말일까? 높은 인플레이션, 자산 버블, 급증한 국가 부채까지 지금의 세계 경제는 문제가 아닌 것이 없다. 그만큼 그동안 세계는 다소 무리한 국가 개입주의에 기대어 실제보다 훨씬 더 배가 부른 상태로 유지돼 왔다. 2024년 기준 미국의 국가부채는 약 35조 7천억 달러, 한화로 약 4경 8천조 원에 달했다. 이 규모가 실감이 나는가? 쉽게 말해, 이 정도 부채는 아무리 갚아도 원금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문제는 국가의 부채가 그토록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민들의 삶이 그만큼 나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삶의 조건이 전반적으로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었기에, 과거의 삶의 질과 오늘날의 삶의 질을 단순 비교하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2025년, 세계 경제의 성장률은 둔화될 것으로 보이며, 앞만 보고 달려가던 흐름은 잠시 숨을 고를 예정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부정적인 일만은 아니다. 눈앞에서 마치 도박판처럼 펼쳐졌던 자산 가치의 급등기를 다시 맞이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을지 몰라도, 마이너스가 아닌 이상 단 1%의 성장률조차 사실상 대단한 성과임을 알아야 한다. 이럴 땐 '오히려 좋아'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오히려 지금이 적기 아니겠는가?

 

우리 대한민국 사회도 그동안의 가파른 성장 속에서 생겨난 크고 작은 상처들을 이제는 봉합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치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처럼 말이다. 이제는 우리가 해오던 일들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보존하며, 더 단단하게 다져나가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바닥에 구멍이 뚫린 배를 타고 언제까지 앞으로만 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책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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