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계속했지만 진전이 없었어. 과학자들은 이미 결론을 내린 것 같았지만 내 앞에서는 말을 못 하고 머뭇거렸어. 그래서 내가 먼저 말했지. 괜찮다고. 당신들이 얻은 결론이 아무리 터무니없는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내 인생보다 더 터무니없는 건 세상에 없으니 그들이 어떤 결론을 내렸든 비웃지 않겠다고 약속했어. 그러자 그들이 말하더군. 현대 과학의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수많은 이론 연구와 실험 결과를 분석한 끝에 1억 년 동안 정보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그 방법은 바로, 돌에 글씨를 새기는 거라고!
- 본문 중에서
세 개 태양이 불타는 켄타우루스 알파성 삼중성계
삼체 문명의 항성급 함대가 지구를 향해 출발한다
<삼체>
차례
- 제1부 삼체문제
- 제2부 암흑의 숲
- 제3부 사신의 영생
저자 소개
작가 류츠신(劉慈欣)
중국을 대표하는 과학소설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8년 연속으로 중국 과학소설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SF 은하상을 수상했다. 주로 중국 현대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근미래의 중국 사회를 묘사함으로써 중국 과학소설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3년 6월 베이징에서 광산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의 일 때문에 산시성 양취안에서 성장했다. 1985년 화베이 수리수력원 수리공정학과를 졸업하고 산시 냥쯔관 발전소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한다. SF에 흥미를 가진 계기가 된 작품은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이며, 그 후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읽고 본격적으로 SF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렇게 소설을 쓰기 시작해 1999년 「고래의 노래」로 데뷔했다. 이 소설은 웅장한 스케일의 상상력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문단과 독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같은 해 『그녀의 눈과 함께』로 SF 은하상을, 이듬해 『떠도는 지구』로 SF 은하상 대상을 거머쥐며 류츠신은 단숨에 중국 과학소설계의 기대주로 떠오른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이들만이 살아남아 지구를 통치하게 되는 미래를 그린 『초신성 시대』, 부모를 구형 번개 사고로 잃은 소년이 평생에 걸쳐 번개의 정체를 알아내는 과정을 다룬 『구상섬전』 등이 있고, 대표작인 「향촌 교사」 「중국 태양」이 실려 있는 단편집 『유랑지구』는 2019년 SF 블록버스터 영화로 제작되어 중국 역대 흥행 2위까지 올랐다. 특히 『삼체 1부-삼체문제』를 시작으로 연이어 발표한 ‘지구의 과거’ 3부작은 문화대혁명에서부터 수백 년 후 외계 문명과 인류의 전면전으로까지 이어지는 SF 대서사시로, 중국 과학소설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과학소설로서는 이례적으로 평단의 극찬과 독자의 열광적인 반응 속에 300만 부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제18회 SF 은하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삼체』는 휴고상, 네뷸러상, 월드판타지상을 석권한 소설가 켄 리우가 직접 번역을 맡아 중국 과학소설로는 처음으로 미국에 정식 출간되었고, 2015년 세계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인 휴고상을 아시아 최초로 수상했다. 류츠신의 소설은 우주와 미래에 대한 극단적인 설정 속에 문화대혁명, 톈안먼 사태, 양탄 공정 등 중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절묘하게 녹여내면서 극적 긴장과 현실감을 획득한다. 또한 풍부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엔지니어 특유의 구체적이고 섬세한 기술 묘사는 그에게 “과학 기술과 상상력이라는 양 날개를 달고 창공을 향해 비상하는 작가”라는 평을 가져다주었다.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큰 물고기. 큰 물고기를 잡아먹는 더 큰 물고기. 더 큰 물고기를 잡아먹는 더 더 큰 물고기. 더 더 큰 물고기를 잡아먹는 더 더 더 큰 물고기. 넓게 벌린 아가리가 켜켜이 쌓여있는 모습이 연상되는 이야기, 중국 태생 작가 류츠신의 소설 <삼체>다. 제목 '삼체'는 '삼체문제'에서 비롯된 것인데, 삼체문제란 세 물체 간에 작용하는 중력과 궤도에 관한 문제로 아직 인류는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소설에는 마치 이 삼체문제처럼 태양이 세 개인 세계관을 가진 문명이 등장하며, 그들의 등장 그리고 인류가 그들과 엮이며 발생하는 이야기가 소설의 주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 <삼체>는 넷플릭스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이미 유명세를 탄 바, 대략적인 줄거리들은 제외하고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의문들 그리고 이야기에 담긴 여러 의미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지구라는 행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전 우주를 세계관으로 삼는 삼체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단연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주제는 바로 인간의 '오만함'일 것이다. 인간은 늘 오만했다. 둘로 쪼갠 돌을 날카롭게 다듬어 야생동물을 사냥할 때에도, 푸른 초원을 거침없이 달리며 말 위에서 육포를 뜯을 때에도, 주위에 사냥꾼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사슴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던 때에도 그랬다. 언제나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인간은 늘 오만했다.
오만은 파멸을 불러왔으며, 때로는 그 오만이 인류 문명의 성장 동력이 되기도 했다. 불가능해 보이던 사자, 곰 그리고 매머드를 사냥할 수 있게 된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불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마치 자연을 다스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고, 오만해졌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이윽고 오만에 빠진 인류가 상대할만한 적이 동족 인류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동족 간의 살육이 시작되었으며, 거대한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스의 비극 중 하나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과 안티고네>는 인간의 오만함이 초래하는 비극적 결과를 잘 다루고 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푼 오이디푸스왕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에 오만해진 나머지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소설 <삼체>의 시대로 들어가 보자. 역시 인간의 오만함이 극치인 시대적 배경에서 시작한다. 바로 '문화대혁명'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인류는 오만함의 극치에 다다라있었다. 인류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찬란한 역사를 모조리 부정하였으며, 그동안 쌓아온 지식 체계를 비롯하여 물질문명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스스로 파괴해 버렸다. 소설 <삼체>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상황이 참 웃기다. 소설 <삼체>의 작중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삼체 세계의 등장으로 세계관이 지구적 세계관에서 범우주적 세계관으로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오만하기 그지없다. 모든 자원과 동력을 한 데 모아 외계 세계의 침략에 대응을 해야 할 때, 인류의 질서가 지구의 질서가 아닌 우주의 질서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인류는 모든 것을 지구적 수준에서 판단한다.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달리 도대체 왜 정치, 사회적 기술은 발전하지 않는 것일까?
총탄이 날아드는 전장의 한복판에서도, 상대와의 압도적인 전력차이에 당장 죽을 위험에 처해있어도, 곧 죽어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인류이며, 인류 이외의 그 어떤 것들에서도 우위에 있으려는 바로 그 오만함. 과학기술이 우주의 거리를 좁혀가는데도 불구하고 인류를 다스리는 운영 체제는 업그레이드하지 않는 오만함. 최신형 AMD CPU와 NVIDIA 그래픽카드를 탑재했음에도 운영체제를 MSFT의 윈도 XP를 사용하는 오만함. 혹은 멍청함. 작중 우주에서 벌어진 일을 두고 지구에서 판단하려는 인류의 오만함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인류가 멍청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류의 생활 수준과 무관하게, 인류는 이놈의 인간이란 육신에 붙잡힌 대로 오로지 인간밖에 모르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당장 내일 뉴스 속보로 안드로메다 행성에서 출발한 외계 문명이 지구를 침략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라도 인류는 오만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 같다. 앞으로 우주 세기를 맞이하게 될 우리 인류는 과연 이런 오만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음으로 생각해 볼 만한 주제는 앞선 주제와 연관되어 있는데, '인류의 통합'이 바로 그것이다. 인류는 우주의 한 복판에서 작은 점에 불과한 '우리 은하'에서 또 작은 점에 불과한 '태양계' 내에서 또 점에 불과한 '지구'에 살고 있다. 인류는 과연 지구의 육지와 바다를 인류 마음대로 갈라놓고 싸우는 국경분쟁이라는 놀이를 언제까지 이어갈까? 우주 진출로 외계문명과의 조우 가능성이 높아지는 한편, 우주로 세계관을 넓혀가게 될 인류 공동체는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화 또는 분화하게 될까?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돌이나 나뭇가지를 던지면서 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한 형태였던 놀이는 점점 복잡해져 갔으며, 다양한 형태로 분화했다. 그리고 끝내 그 놀이에 입각한 규칙으로부터 사회 구조가 만들어졌고 문화가 탄생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계속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정한 규칙에 따라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정치적 분쟁을 하기도, 합의를 하기도, 극단적으로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인류의 놀이가 끝날 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우주에 발을 디딜수록 지구 행성의 크기가 자꾸 작아지면서, 중요하고 심각하게 생각했던 여러 문제들이 점점 작게만 느껴지는 시기가 도래했다. 지금에야 오직 지구라는 작은 세계관 내에서 발생하는 충돌이지만, 세계관이 넓어질수록 충돌의 범위는 점점 커질 것이며, 그러한 이유로 지구에 있는 인류는 지구를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권력이나 체제의 필요성이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인류는 세계정부처럼 지구를 단일 공동체로 하는 통합체제의 등장 여부를 결정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왜? 외계 문명과 새로운 놀이를 하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가장 심오하면서도 생각해 볼 만한 주제는 '기술 진보와 삶의 형태'에 대한 것일 테다. 어느 날 나는 우주복을 입은 채 아무것도 없는 우주 한복판에서 우주비행선과 유영을 하고 있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임무를 마치고 선실 내부로 복귀한 나는 우주복을 벗었다. 그리고 그때 강한 압박감과 공포감을 느꼈다. 그건 마치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상실의 슬픔이었고, 우주선과 우주복이 없다면 혹은 둘 중 어느 곳에라도 작은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원자형태로 다시 분리될 수 있다는 극한의 공포였다. 그 순간 나는 마치 압력 탱크의 내부가 대기압보다 낮아지면서 순간적으로 탱크가 접히는 것처럼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이건 비록 꿈이었지만, 나는 그날 인간 존재의 한계를 명확히 느꼈다. 인간의 삶 그리고 터전이라는 것이 결국 기술의 진보 하나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우주를 유영하는 인류를 상상했을 때 그 생활이 지구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상상하기가 참 어렵다. 한 가지 상황을 가정해 보면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낸 기계장치가 부서지는 게 빠를까? 아니면 지구가 부서지는 게 빠를까? 단 한 개라도 나사 조임이 잘못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우주선일까? 아니면 지구일까? 기계장치를 다루는 일을 하는 나는 지구의 편에 서겠다.
한 가지 가능성은 있다. 우주에서 생명을 낳고 기를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이 충분하다고 가정했을 때, 우주에서 태어난 인류는 지구인이 아니라 지구를 경험하지 못한 인류일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인류로부터 우주 유영이 오히려 더욱 자연스러운 삶의 형태인 인류를 맞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여전히 소설 <삼체>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류가 우주에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과연 우주가 인류의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삶의 터전은 지구가 될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부랑자 신세로 지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인류는 심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단순히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인류가 지나치게 나약하기 때문에, 삶의 이유와 행동의 근간이자 매개가 될만한 인간적이면서 철학적인 고찰이 필요한 것이다. 인류의 우주 적응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쉽게 가능하다고도 보기 어렵다.
인류는 우주 시대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러더퍼드 엔진, 랩터 엔진, 아르키메데스 엔진 그리고 차세대 엔진의 개발과 개량. 하루가 멀다 하고 로켓을 우주로 쏴 올리는 핵심 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며, 페이로드(탑재량)가 증가하고, 1회 발사 단가가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 항공우주국 NASA를 중심으로 민간기업인 스페이스 X, 로켓랩(RKLB)을 비롯한 유수의 기업들이 우주에 진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인류는 상상처럼 혹은 소설 <삼체> 세계관처럼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우리는 아직 우주를 자유롭게 돌아다닌 적이 없고, 심지어는 가장 가까운 달에도 몇 번 가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화성으로의 이주를 꿈꾸는 일론머스크의 발언은 우리 시대에는 터무니없는 발언에 가까워 보인다. 다만, 방향타는 그쪽으로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인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인공지능도 해야 하고. 핵융합발전도 해야 하고. 양자컴퓨팅도 해야 하고. 우주로 나가야 하고.
사실 그런 의미에서 아직까지 인류가 세계관을 우주로 확장시켜야 할 만한 마땅한 이유는 없다. 우리들 외에 다른 생명체는 확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서 어떠한 신호도 받지 못했고, 만약 외계 생명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우주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지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주는 인류가 이해하기에 지나치게 방대하고 불확실하다. 또한 인류는 지구 내의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도 여력이 부족하다. 종교적 의미에서 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대로 놔두는 편이 나은 것처럼, 굳이 알지도 못하는 우주를 끌어들여와 인류의 혼돈을 가속화하기보단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기도 벅찬 실정이다.
그런데 나는 소설 <삼체>가 우리 시대에 등장한 것이 정말로 놀라울뿐더러, 시의적절한 운명을 타고난 것이라고 직감한다. 세 개의 두꺼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우주 시대를 앞둔 인류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의 표본이 담겨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꽤 현실적이고 적나라하다. 비록 인간의 상상력에서 만들어진 소설일 뿐이지만, 이야기에 담긴 의미는 소설을 뛰어넘었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드라마 <삼체>를 보면서 방대한 우주 세계관이 다섯 친구들의 이야기로 국한되는 안타까운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삼체>를 꼭 책으로 읽어보길 강력하게 권한다. 그리고 특히 이 이야기의 정수는 세 권의 책 중 3권에 담겨있으니, 끝까지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우주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인류가 겪어야 할 여러 가지 가능성 중 꽤 일리 있는 미래시가 담겨 있는 소설이다. 책 <삼체>를 매우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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