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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조금 빨리 읽었더라면 비트코인을 샀을까? , 앨빈 토플러 <부의 미래>

by 세자책봉 2024.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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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경제와 사회가 형태를 갖추어 감에 따라 개인과 기업, 조직, 정부 등 우리 모두는 미래 속으로 뛰어드는 가장 격렬하고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모든 사항을 고려했을 때, 이것도 한번 살아볼 가치가 있는 환상적인 순간이다. 미지의 21세기에 들어온 것을 뜨거운 가슴으로 환영한다!
- 본문 중에서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예견한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불황, 파업과 도산, 치솟는 실업률, 예측 불가한 주가 변동, 4차 산업혁명, 암호화폐의 출현 등
부의 흐름에 관한 가장 위대한 통찰, 불확실성의 시대를 해석할 단 하나의 패러다임

<부의 미래>


차례

  • 1부 혁명
  • 2부 심층 기반
  • 3부 시간의 재정렬
  • 4부 공간의 확장
  • 5부 지식에 대한 신뢰
  • 6부 프로슈밍
  • 7부 데카당스
  • 8부 자본주의의 미래
  • 9부 빈곤
  • 10부 지각 변동

저자 소개

작가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금세기 최고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국의 뉴욕 대학교를 졸업한 후 과학, 문학, 법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다섯 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공장 노동자 생활을 했는가 하면 신문 기자로도 일했으며,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경제지인 <포춘>의 편집장, 코넬 대학교의 객원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미래 쇼크>, <제3물결>, <권력이동> 등 그가 쓴 일련의 미래학 도서들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앨빈 토플러의 아내이자 미래학자인 하이디 토플러는 법학과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사회사상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이탈리아 공화국 대통령 메달'을 수상했다. 토플러 부부는 '토플러 어소시에이츠'를 공동 창설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정부와 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제와 기술의 발전, 사회 변화에 대해 조언했으며, 글로벌 트렌드에 대해 집필과 강연 활동을 활발히 이어갔다. 2016년, 2019년 타계한 앨빈 토플러와 하이디 토플러의 인간에 대한 낙관과 애정에 기반을 둔 경제학적 통찰은 지금까지 우리 삶의 여러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한 뒤 편안한 마음으로 미국 주식시장의 프리마켓 움직임을 읽고 있던 나는 갑작스럽게 규모가 큰 가격 변동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여러 기업들은 물론이고,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장의 가치가 순식간에 -10%를 내리찍었고, 원달러 환율은 1400원 고지를 뚫었다. 그것도 아주 순식간에 말이다. 그리고 나는 시장이 그렇게 반응한 이유를 국내 뉴스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그것이 원인이었다. 2024년에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일이 벌어졌다. 유신시대를 지나온 지 반백년이 넘은 이 시기에 말이다.

 

국회의원들이 계엄을 해제하기 위해 출입이 통제된 여의도 국회의사당 담을 넘었고, 미처 여미지 못한 옷을 입은 채 구둣발로 뛰어다니는 모습이 전국적으로 생중계되었다. 이어서 국회를 점거하기 위해 출동한 군인들이 도착했다. 일부 과격한 상황이 연출되는 듯했으나, 다행히도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계엄은 해제됐다. 사건이 벌어진 지 2시간여 만에 말이다. 덕분에 온 국민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한편, 나는 국내 정치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는 것과 별개로 전개되는 한 가지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바로 시장의 등락 그리고 그 반응속도였다.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주식시장과 코인시장이 방금 전 일어난 한 국가의 국가적 재난을 이유로 이렇게도 빨리, 다시 말하면 어떻게 이렇게 쉽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이미 수차례 특정 기업의 실적발표와 동시에 주식차트가 움직이는 것을 경험해 왔기에,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제약이 가져오던 정보의 비동시성이 대부분 없어졌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다양한 의미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이는 분명 우리 사회에 큰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내게는 이것이 오늘날 세계 경제시장에서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며, 세계가 그 정도로 빨리 반응할 정도로 정밀하고 치밀하게 고도화되어 있다는 증거로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앨빈 토플러는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무려 2006년에 예측했다. 자신의 저서 <부의 미래>를 통해서 말이다. 이 책의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앞서 언급한 '동시성'에 관련된 내용이다. 동시성이란, 말 그대로 A라는 사건과 B라는 사건이 시간적으로 얼마나 같은 시간에 일어났는가에 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A와 B사건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인간의 두뇌활동에서 뉴런으로 전기 신호를 보냈을 때, 즉각 생각이 떠오르면 동시성이 좋은 것이고,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동시성이 떨어진다거나 비동시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A 사건이 벌어진 뒤에 영향을 받은 B 사건이 큰 시간차를 두지 않고 벌어진다면 동시성이 좋은 것이다.

 

책에서 앨빈 토플러는 동시성의 반대인 비동시성에 초점을 맞춘다. 즉, 상호 간 맞춰지지 않는 것에 집중한다. 그는 비동시성이 발생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 비동시성을 줄이는 것이 앞으로의 사회적, 국가적 진보에 필수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끔 만드는 일등공신은 단연코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의 진보 속도는 정말 어마어마한데, 이제는 조금 진부하지만 무어의 법칙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고, 현실적으로 봤을 때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속도를 보면 변화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충분히 체감이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과학기술개발의 발전 저해 요인으로 두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규제'다. 이는 당연히 '규제'라는 것이 자유로운 개발을 제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만, 여기서 핵심은 규제의 영역보다 상호 간 변화의 속도가 서로 맞지 않다는 데에 있다. 쉽게 말하면, 기술이 변하는 속도만큼 규제도 변화하여 최소한의 합리성을 가진다거나 불법성 같은 것들을 걸러주는 거름망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최근 미국 정부효율부(DOGE, 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의 수장이 된 일론머스크는 미국 해양대기청(NOAA)으로부터 받은 과도한 규제에 대해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는 로켓 발사 기업인 '스페이스 X'가 해양대기청으로부터 로켓이 떨어질 수 있는 지역에 상어와 고래를 보호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해당 지역에 상어와 고래가 얼마나 살고 있는지 데이터를 요청했는데도 아무런 데이터도 받을 수 없었고, 덕분에 상어와 고래의 분포도를 직접 만들어야 했다면서 기술과 규제의 비동시성에 대한 문제를 꼬집었다. 더 나아가, 로켓 발사에 따른 음파 충격이 바다표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바다표범에 헤드폰을 씌우고 실험해야 했던 일도 있었다며 비판했다. 기술과 규제의 충돌, 즉 비동시성은 정작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든다. 이런 맥락에서 일론 머스크가 평소 '규제 철폐'를 주장하던 트럼프를 지지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기술 분야만 언급했지만, 이 외에도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이 같은 비동시화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민주당 의원이자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개빈 뉴섬은 '테슬라'의 전기자동차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며 공화당을 지지한 일론 머스크를 한방 먹이려고 했는데, 이에 일론 머스크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신의 공장들을 모조리 옮길 것이라며 응수했다. 규제는 아니지만 정부의 특혜를 차단함으로써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기술로 대표되는 기업과 상반된 행보를 보이는 정치적 결정의 비동시성. 바로 이런 것이다.

 

문제는, 이런 비동시성이 결국 비효율성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중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이다. 대중의 흐름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어느 시대든 인간은 살아가기 가장 효율적인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 왔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흐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유럽을 보라. 자국에서의 삶이 힘든 난민들이 선진국인 유럽으로 몰려들고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비동시성이 야기한 비효율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더 나은 효율을 찾아 이동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실리콘밸리다. 인간은 누구나 편안하고 효율적인 삶을 추구하며, 기술 개발을 선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리콘밸리는 꿈의 도시로 자리 잡았다. 결국 이러한 도시가 만들어진 이유는 사회 곳곳에 만연한 비동시성에서 비롯된 비효율을 줄이기 위함이다.

 

한편, 앨빈 토플러는 경제영역에서 화폐와 관련된 비동시성을 지적하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몇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그가 지적한 문제는 화폐의 가치 자체보다는 화폐의 쓰임과 관련된 것이다. 세계화된 세상에서 화폐 사용의 불편함은 각 국가의 화폐가 통합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미국을 여행할 때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게다가 환전 시 세금을 지불해야 하고, 대규모 금액을 환전할 경우 이동성에도 제약이 따르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토플러는 화폐의 비동시성을 줄이기 위해 공간적, 시간적 제약을 초월해 사용할 수 있는 세계 공통 화폐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안이 참 묘하다. 그가 2006년에 제시하는 이 개념이 오늘날 암호화폐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가치를 지닌 현물로서 기능하는 암호화폐는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그는 마치 암호화폐의 등장을 예견한 듯 정확하게 그 가능성을 꿰뚫어 보았다. 나는 왜 2006년에 이 책을 읽지 않았을까?

 

이 책의 두 번째 주제는 프로슈밍(Prosuming)이다. 프로슈밍이란 생산(Produce)과 소비(Consume)를 하는 행동을 통합적으로 지칭하는 말인데, 이는 주로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비경제적 활동들을 포함하며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프로슈머(Prosumer)라고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프로슈머라고 할 수 있다. 알아차리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경제활동을 통해 재화를 얻고 소비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도 하고 있다. 생산의 영역은 모든 분야에 담겨있다. 집에서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들은 모두 생산적인 일이다. 가족이니까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지, 사실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생산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가정에서 아이들을 위해 기본적인 인성교육이나 사회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수반되는 비용을 사회가 지불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토플러에 따르면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이렇게 대중들이 문화적 혹은 관습적으로 당연시하던 여러 가지 행동들이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더 나아가 사회가 이를 대신 수행할 경우에 소모되는 비용을 절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칼 폴라니가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경제가 사회와 구별되어 존재하거나 경제가 사회를 포괄한 적이 없었고, 사회 안에 경제가 있었다.'라고 말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으며,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함축적인 힘을 보여주는 주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경쟁이라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만든 자본가들이 득실득실한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다 보면 두 가지 결론에 다다른다. 첫째, 자본주의는 과거 전통 사회에서 대중들이 당연시 여겼던 프로슈밍영역을 사회에서 별도로 분리시켜 그것을 경제적 영역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그것을 새로운 가치 창출로써 본다는 것. 둘째, 그러므로 자본주의 사회란 포괄적인 의미에서 '사회의 거대한 민영화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민영화 과정을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처럼 이해하지만, 사실 이는 오늘날 경제학이 이런 것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하다.

 

결국 이렇게 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회적 영역의 지나친 민영화는 특정 개인에게는 막대한 부를 안겼지만,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비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목격하고 있다.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보라. 의료보험체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려스러운 건,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가치 창출이라는 명목 아래 개인에게 부담을 가중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집에서 부모님을 간병하던 일이 요양병원으로 옮겨가며 비용 부담이 커진 것처럼, 공교육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비싼 사교육에 의존하게 된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처럼 말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더욱 개인의 역할과 임무가 가중시킬 것이며, 이는 개인을 점점 더 피로하게 만들고 결국 시간마저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SNS다. SNS를 만든 기업은 개인에게 모든 일을 떠넘겼다. 자신들은 플랫폼 관리를 위한 역무에만 참여할 뿐, 그 어떠한 창조적 힘을 낭비하지 않는다. 실제로 SNS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끊임없고 열정적인 개인의 참여 덕분이다. 이용자들은 그것이 일인지도 모르게, 일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플랫폼을 만들어낸 기업에게 막대한 수익을 올려주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구 업계의 대표적인 브랜드 이케아(IKEA)를 생각해 보라. 언젠가부터 우리는 가구를 스스로 조립(DIY)하고 있다. 과거에는 전문가에 의해서 완전히 잘 조립된 가구를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개인의 노동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이 가구를 조립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분명 시간, 공간, 가격적인 면에서 제약을 줄인 혁신적인 성과로 분류할만하다. 하지만 그것은 해당 기업에게 해당되는 말이지, 개인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개인은 분명히 할 일이 늘었다. 이제 우리는 가구 조립뿐만 아니라, 집 인테리어와 가전제품 수리, 나아가 차량 수리까지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한다.

 

오늘날 개인이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이런 사회적 변혁 속에서 개인들에게 점점 가중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의 작동원리에 따라 개인들의 시간과 체력이 더욱 소비되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과거보다 많은 일들을 하루에 다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분명 진보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질문은, 과연 이러한 변화를 우리가 진정으로 원했냐는 점이다. 우리는 정말 스스로 로스터리 전문점처럼 커피를 내려 마시고, 컴퓨터를 조립하고, 가구를 만들며, 차량을 수리하고, SNS에 피드를 작성하는 것을 즐겨서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지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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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는 이 책의 결론에서 그가 나열한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를 바탕으로 국제 정세를 예측하며 마무리한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인인 그가 세계를 미국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도 한반도의 정세에 주목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한민국과 북한의 극명하게 대비되는 상황을 언급하며 한반도가 지정학적 시나리오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 지역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판단에는 굳이 세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토플러는 한반도의 정세를 그의 이론인 시간, 공간, 지식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공간과 지식의 관점에서 한반도의 상황은 비교적 명확하다. 북한은 중국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핵무기를 통해 공간적인 영향력을 넓히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지식적인 면에서는 그다지 영향력이 없다. 북한은 지식에 앞서 인민들의 생활과 굶주림부터 해결해야 하는 처지니까. 그러나 한반도 정세를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상황은 치명적이다.

 

시간의 관점에서 한반도의 시나리오는 무궁무진하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 것(그러나 이미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한민국과 북한의 수준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 '시간'이 갈수록 북한은 더욱 굶주림에 시달리게 될 것. 결과적으로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정세는 악화될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동향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또한 대한민국과 북한에 살고 있는 대중이 겪고 있는 '시간'의 개념은 극명하게 다르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북한 사람들은 여전히 농촌 생활과 같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앨빈 토플러가 강조한 것처럼 '시간'은 한반도 정세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그러한 과정이 결국 '시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고,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듯 삶의 변화 속도와 발맞추어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한국인들은 언제든지 갑작스러운 통일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양 국가의 점진적인 노력이 결국에는 핵무기라는 치명적 실수를 낳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며, 일방적인 원조나 굽힘이 정답이 아니라는 점이다. 셋째, 이러한 역사적 변화는 결코 이상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결국 한반도는 통일될 것이고 그 과정을 주도하는 국가는 반드시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2006년에 쓰인 앨빈 토플러의 책 <부의 미래>는 오늘날 2024년에 읽어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그는 당시 미래 세상을 거의 정확하게 예견해 냈다. 실제로 그가 예상한 세계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때는 미래를 예견하는 책이었다면, 오늘날엔 오늘의 시대를 설명하는 책이 된 것이다. 훌륭한 책이라는 건 이런 책일 것이다. 조심스럽게 예상해 보자면, 분명 미래에는 이 책이 2024년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 가슴에서 시원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일부 아쉬움도 남는다. 시간과 공간, 지식으로 설명이 가능했던 시대가 지나고 다음 시대가 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또 한편으로는 이 책의 주를 이루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결론들 때문에, 그의 비상한 노력의 한계가 지어지는 것에 일부 씁쓸함이 느껴진다. 인간은 언제나 이상을 꿈꾸며 살아가지만, 많은 경우에서 이상적인 결론은 맞이하지 못하는 존재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책은 정말 잘 쓰인 교과서라고. 지식을 학습하기 위한 최고의 책이라고. 하지만 실제 세상을 살아가고 이해하는 데엔 아주 약간은 모자란 점이 없지 않다고. 세상은 이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대표되는 미국이 결국 트럼프를 뽑았다. 이상보다는 실용, 실존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건 저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확실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진 값어치가 없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앨빈 토플러의 책 <부의 미래>는 정말 미래인 오늘날을 잘 예견했다. 그러나 욕심이 많은 내가 약간의 아쉬움이 있을 따름이다. 책 <부의 미래>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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