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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카페 창가에 앉아(In 제주 함덕 카페 델문도)

by 세자책봉 2022.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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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1. 08. 이른 아침 제주 함덕 카페 델문도에서 커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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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제주 함덕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아침이 밝아왔다. 조용한 손길로 대강 옷을 차려입고 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제 오후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장과 반려견 용한이와(성은 조) 함께 걸었던 길로 들어섰다. 숨죽인 듯 고요한 골목 사이로 희미한 바람이 불어왔다. 제주에서 맞는 겨울 바닷바람은 그리 차갑지 않았다. 해변가로 나가려면 함덕에서 혼술 하기 좋다고 알려진 술집 ‘십오야’가 오른쪽에 있는 골목의 끝에서 왼쪽으로 돌아가야 했다.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최자로드의 최자가 다녀가서 장사가 정말 잘 된다는, 그래서 이곳 지역 주민들은 예전처럼 이용할 수 없음에 불만 투성이라는 해장국집이 있었다. 해장국집을 마주 보고 어제 용한이와 달리기를 하며 놀았던 좁은 잔디 들판이 보였다. 지나간 가을이 한껏 물든 노란빛이었다. 잔디가 손상되지 않은 것을 보니 인적이 드문 모양이었다. 걸어가는 길의 좌우에는 야자수처럼 생긴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져있었다. 이런 나무를 볼 때면 제주가 생각보다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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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정면에는 검은색 현무암을 쌓아 만든 방파제가 해안을 따라 좌우로 펼쳐져 있었다. 그 너머 제주 함덕의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맑은 물색과 하늘색, 파란색과 검은색이 뒤섞여 물결치고 있었다. 바닷속에 잠겨있는 현무암은 바닷빛의 선명함을 더했다. 앞으로 좌우 갈림길을 마주했다. 좌측으로는 해안가의 끝을 알리는 등대가 서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끝을 보는 건 왠지 싫게 느껴져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때로는 방파제에 올라가기도, 때로는 해변의 모래 위를 걷기도 했다. 함덕의 해안은 한껏 오므려진 모양으로 그리 긴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새 스마트폰 화면엔 숫자 7이 그려져 있었다. 느긋한 마음만큼 시간도 느긋하게 흐르면 좋으련만. 여유로운 마음이 길었던 산책길도 짧게 느껴지게 하는 듯했다. 무언가 이대로 숙소에 돌아가긴 아깝다는 생각이 스쳤다. 제주 함덕의 아침 기운을 한껏 느끼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변에 보이는 카페는 단 두 곳뿐이었다. 스타벅스와 델문도. 안을 들여다보니 스타벅스는 아직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델문도는 내가 지금 서있는 곳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재차 들여다보았다. 옳거니! 이곳의 오픈 시간은 오전 7시였다. 정확하게 7시 8분, 카페 델문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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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문도의 내부는 총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층엔 야외 테라스도 있었다. 테라스는 바다를 더욱 가까이 끌어안고 있어 멋진 뷰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어쩐지 사람의 발길이 오래된 모양이었다. 슬쩍 테라스로 다가가 봤다. 아까의 골목과는 차원이 다른 바람이 불어왔다. 역시 겨울은 겨울이고, 역시 바다는 바다였다. 다시 안으로 돌아와 커피를 주문했다.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했지만 아직 기술자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 커피는 아메리카노다. 검은색이 짙은 갈색빛 아메리카노가 담긴 멋들어진 머그잔을 들고 앉을자리를 찾았다. 위치 선정은 축구 골게터의 위치 선정만큼이나 중요하다. 어떤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통로 쪽은 특히 위험하다. 다행히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라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몸은 창가 자리를 원하고 있었다. 커피를 주문했던 2층은 어째 창가 자리가 영 별로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가는 사람도 많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과감하게 1층으로 내려갔다. 오오, 아주 멋들어진 풍경에 한적함까지 간직한 곳이었다. 아무도 없지만 습관처럼 서둘러 창가 자리에 앉았다. 오른쪽 뒤엔 내가 내려온 계단이 있었다. 바로 뒤엔 멋진 그림이, 왼쪽엔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소파식 의자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정면. 제주 함덕의 바다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바다 위로는 일어나는 태양빛과 하늘빛, 구름빛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차. 이런 멋진 장면에는 멋지게 커피를 마셔주는 게 국룰˘이다. 머그잔을 들어 아메리카노를 삼켰다. 후루룩. 겨울의 차가움과 커피의 따뜻함이 한껏 대비됐다. 따뜻함이 몸을 덮였다. 이내 서서히 생각에 잠겼다. 아무 생각도 없지만 생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또 어떤 망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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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른 아침부터 왜 갑자기 카페에 온 것인지 의아했다. 딱히 아침 산책 중간에 카페에 들를 이유는 없었는데 말이다. 커피를 마시고 싶었던 건 아니다. 이곳에 들른 건 순전히 기분 탓이었다. 그저 여유로운 곳에 오다 보니 여유가 생겨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순간 무언가 뇌리를 스쳤다. 여유? 여유를 즐기려고 카페에 왔다고?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닌가? 커피를 마시는 행위만으로 여유로움을 충족할 수 있었다면 굳이 집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시간과 돈을 들여서 카페에 방문했다. 이것은 분명 이곳에서 커피 이외의 무언가로부터 여유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질문을 바꿨다. 어떤 이유로 카페에서 여유를 느끼는 것인지 궁금했다. 나는 이것이 카페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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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은 친구들이 정도 많다는 정형돈의 대답과 비슷한 결론을 내린듯한 느낌이 드는것은 왜일까

나는 마주 보고 있는 유리창에 주목했다. 이곳 델문도와 마찬가지로 카페는 대부분 유리창으로 바깥세상을 연결하고 있다. 유리창은 시각적으로는 양방향 소통을 허용하지만 물리적으로는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한다. 또한 유리창은 구조적으로 카페를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짓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을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과 카페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으로 구별하고,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특별해진 사람들은 창가에 앉아 유리창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사람들은 적당한 금액을 지불함으로써 일상의 것에 시선을 던질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마치 권력을 가진 자가 높은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행위를 이제 나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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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권력 이양 장소나 다름없었다.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공간을 얻었고 권력을 얻었다. 결국 카페에서 느끼는 여유는 카페라는 공간으로부터 이양받은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듯했다. 물론 권력만으로 여유를 전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카페에서 여유로움을 느끼는 것엔 권력이 한몫 차지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이번 망상은 여기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커피가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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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룰 뜻 참조: 나무위키
▶사진 참조: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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