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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강사가 바뀌니 어제는 정말 이상한 강사였다는 확신이 들어(With 달달한오븐)

by 세자책봉 2024.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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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빵집 맛집_달달한오븐_240223

 

자유로운 선택과 사회적 질서의 공존 가능성을 넘나드는 철학적 문턱에 대한 인지나 설명이 전혀 없는 강의.

 

조심스러운 접근보다는 본인에게 쏠린 인지편향과 편견이 그대로 반영된 강의.

 

객관성이 필요한 강의에서 객관성이 전혀 없는 강의.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서라도 청중을 감정의 영역으로 끌고 가려고 시도하는 매우 저렴하고 파렴치한 강의.

 

인간이기에 선택 가능한 자유의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인지. 그런 것을 논할 수준조차 되지 못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그걸 논하기엔 자리가 너무 비좁은 것인지.

 

만약 그렇더라면. 그런 자리가 아니라면. 최소한 인정이라도 하고 넘어갔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당신의 말이 모두 정답이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최소한 인생에는 정답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은 이 사회가 점차 규제와 규율로 물들어가도 아무렇지 않을까?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범위가 좁아지더라도?

 

이 정도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경계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대로 가다간 우리의 정치체제가 사회주의로 변질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좁은 공간에서 조차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데 말이야.


결국 철저한 사회적 감시와 모든 것에 규제가 있는 사회주의로의 변화가 답인 걸까.

 

아니면 우리는 변화의 한복판에 놓여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왜, 왜! 내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이 작자가 대체 왜 마리루티와 똑같은 수준인지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다.

 

내가 너무 흥분한 탓일까. 아니면 내가 괜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걸까. 무엇이 문제일까. 수업을 듣는 내내 생각했다.

 

정신 차리고, 바꿔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뻔뻔함이나 편향적 사고가 있어야만 화자로서 위치에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근거가 있든 없든 내 말이 곧 정답이라는 뻔뻔함. 같은 편을 만들고 무지인을 현혹시킬 수 있는 편향적 사고.

 

청중을 마치 약자를 대하듯 타이르는 태도와 청자와 화자를 나누는 명확한 위계질서까지.

 

여기에 방점은 대충 그럴싸하게 들리는 조잡한 구술능력일 테다.


구해줘_OCN

 

그러니까 중요한 건 아무런 철학적 고찰 없이 사상 또는 인간의 본질적 자유에 대한 설명 없이 떠들어대는 말이 아니라,

 

결과를 보여주는 객관적 자료다. 누구나 이해가능한 자료말이다. 명확하고 진실된 자료. 감정적인 공감이 아니라.

 

그놈의 공감! 공감!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눈을 가리려고 시도하는 것들은 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지만

 

마음을 움직이려는 것만큼 간사하고 악한 것이 없다.

 

관심도 없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든 주입시켜 보겠다고 감정적인 영역까지 파고드는 당신이 싫다.

 

제발. 나의 감정을 너의 영역으로 끌고 가지 말아 줘. 역겨우니까.

 

오늘의 포인트 멘트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세요"다.

 

그래 나도 안다. 당연히 누구에게나 소중한 사람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서 억지로 억지로 욱여 밀어 넣겠다는 그 심보가 싫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이 "세상에 종말이 올 거니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종교적 언어와 뭐가 다른 건데?


자자, 진정하고. 어쨌든 나는 당신을 처음 봤고. 당신을 싫어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싫지 않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이건 그냥 어제 강의를 들으면서 생생하게 느꼈던 감정들을 아무런 맥락 없이 써 내려간 막글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다거나 혹은 나의 기분이 별로여서 당신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한 것이 아닐까에 대해 증명하고 싶었다.

 

오늘 기분은 어제와 매우 비슷했다. 내 행동거지에 특별히 다른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분에 영향을 줄만한 일도 없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오늘 강의에는 당신이 아닌 다른 강사가 교육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곧 확신했다.

 

1교시가 끝나고 나는 오늘 새로 온 강사로부터 당신에게 느꼈던 감정을 손톱만큼도 느낄 수 없었다.

 

오늘 들어온 강사는 당신에게서 보였던 무지와 편협함, 애꿎은 위계나 거만한 태도 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 예의. 중립적이고 신중한 단어 선택. 감정적 주입 없이 이루어지는 깔끔한 설명.

 

문득 당신에게 고맙다.

 

당신에게 느낀 감정이 그대로 적힌 나의 막글이 결코 내게만 초점이 맞춰진 편협한 것은 아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오늘 확신했다.

 

당신은 정말 이상한 강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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