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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28.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장 주네(Jean Genet)

by 세자책봉 2021.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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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주네(Jean Genet) 저,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2007
최초 작성일 2021.10.25

2021. 10. 25. 얇은 페이지와 묵직한 글, 압축강도 두 배

개별성(個別性): 사물이나 사람 또는 어떤 상황이나 현상이 각각 따로 지니고 있는 특성
대상들에 대한 놀랄 만한 존경심. 각개의 대상은 '홀로' 있을 수 있기에 아름답다. 그 안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무엇인가 있다. 그러므로 자코메티의 예술은 대상들 사이의 사회학적인 관계 -인간과 그의 분비물이라는 관계-를 맺어 놓은 사회적인 예술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가진 것 없어도 당당한 룸펜의 예술이며, 대상들을 서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모든 존재, 모든 사물의 고독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순수한 지점에 이르고 있다. 대상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혼자다. 그러므로 내가 사로잡혀 있는 필연성에 대항해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이대로의 나일 수밖에 없다면 나는 파괴될 수가 없다. 지금 있는 이대로의 나, 그리고 나의 고독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신의 고독을 알아본다."
-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p.60, 장 주네(Jean G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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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작성한 글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책을 읽고 난 뒤 책을 한 단어로 표현해보려는 것처럼, 많든 적든 모아져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한 단어로 표현해내려는 시도를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다. 그 시도는 인간, 자연, 예술작품, 행정, 법, 제도, 사회, 과학 등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대상이 되고, 나름의 기준을 넘은 대상들로부터 촉발된 개인적인 욕망이 그런 행위를 시도하게끔 만들고 있다.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구심점이 될만한 무언가를 찾아내어 간직하고 싶은 욕망은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한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 특징을 찾아내려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진 데이터 피처 추출 기술처럼 궁극적인 세상의 의미를 찾아내겠다는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사실 큰 의미는 없지만 나름 나만의 방식으로 이 세계를 이해해보려는 우매한 피조물의 몸부림 -지렁이의 한 꿈틀거림-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어쨌든 이런 식의 삶의 태도는 좋든 싫든 여태껏 나를 이뤄왔고,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데 결코 빠지면 안 되는 성질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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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없다는 사실은 꽤나 명확한 듯 보인다. 모든 것이라는 단어 조차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무엇을 포괄하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모든 것의 범위를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하루하루 늙어가는 존재들이라는 우주적인 특성으로 인해 세상의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다른 표현으로 궁극적인 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는 뜻이기에 슬프면서도, 그렇기에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기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맙기도 하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앎에 대해 과감하게 미련을 버릴 수 있게 함은 물론, 결국 죽기 전까지도 답을 찾기 어려워 보이는 물음에 대해서는 굳이 답을 찾으려 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이 사실을 받아들여 답이 없는 사유를 멈추고 현실의 삶에 충실할 수 있었기도 하다. 그런데 기억 저편 너머 어딘가에 있던 거대한 물음 하나가 '자코메티의 아틀리에'가 만들어낸 위대한 사유의 통로를 통해 세상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었다. 이것만큼은 정리할 수 없을 것 같던 한 가지 물음은 그 어떤 것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양과 질을 지니고 있어 함부로 의문을 내비쳤다가는 스스로에게 사로잡혀 존재가 사라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기에 사유하기를 꺼려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세상' 그리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 이였다.

과연 세상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인간은 끊임없이 사유하는 존재라고 했던가. 비록 한 덩어리 인간의 몸으로 구속했을지라도 자유로이 사유하고 탐구하는 것은 구속할 수 없는 개별적인 주체임을 증명하려는 듯 '자코메티의 아틀리에'가 끄집어낸 이번 기회에 세상의 궁극적인 지점, 즉 초월에 다가가기 위해 다시 한번 세상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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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의 아틀리에'는 작가인 '장 주네(Jean Genet)'가 초현실주의 조각가로 활동하던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아틀리에(작업실)'에 드나들며 그와 나눈 여러 가지 교감을 써낸 책이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주네와 자코메티의 사이는 첫 만남부터 매우 각별했다고 한다. 그렇게 주네는 그와의 대화를 마중물로 장장 4년에 걸쳐 자코메티의 예술론이 듬뿍 담긴 글을 썼다. 주네가 꽤나 자주 아틀리에에 들렀던 모양이다. 책에 담겨 있는 여러 가지 일화를 보면 그들의 대화는 아틀리에, 카페, 길가, 마당 등 다양한 장소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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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책에는 어느 날 자코메티가 방 한구석에 놓인 의자 위에 걸쳐진 수건을 보며 느낀 점을 이야기했던 일화가 담겨있는데 그의 표현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순간, 개개의 사물이 홀로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사물이 다른 사물을 짓누를 수 없도록 하는 무게-아니 차라리 무게의 부재-를 갖고 있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소. 홀로 있는 그 수건은 너무도 혼자인 듯해서 의자를 슬며시 치워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어요. 수건은 자기 고유의 자리, 무게 그리고 자기만의 침묵까지도 가지고 있었던 거요. 세상은 가볍고도 가벼워 보였어요...


수건에 대해 자코메티는 얼굴을 닦고 몸을 닦는 데 쓰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수건이 아닌 원래부터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수건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찾아내어 수건을 제외한 그 모든 것들을 시선에서 지우고 오로지 수건만의 개별 존재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개별 존재에 담긴 고독을 바라본다. 결국 그는 수건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자코메티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살아 있는 존재나 사물을 하찮은 시선으로 보아 넘긴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또 이번엔 촛대를 마주하고 말하는 일화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것은 촛대다, 이게 그거다.'  


이번에도 자코메티는 촛대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듯 촛대를 촛대 그 자체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개별적인 존재에 담긴 고독을 끄집어내어 그의 허름한 아틀리에에서 존재로서의 가치가 담긴 작품을 만들어 낸다. 아무래도 자코메티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외형적인 모습, 새로운 느낌, 예술적인 표현 같은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존재 안에 숨겨진 가치를 찾는 일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가치를 조각이라는 행위를 통해 온전히 외부 세계로 끌어내어 그의 작품 속에 담아두는데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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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처음 나를 강하게 붙잡았던 것은 세상에 있는 각각의 존재들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자코메티의 태도였다. 세상에는 아직도 개별성을 인정받지 못해 고통받는 존재들이 너무나도 많다. 대표적으로 아직까지도 같은 인간임에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에 고통받는 유색인종들, 자기가 생각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욕설이 가득 담긴 풍선을 터트린 듯이 고래고래 소리치는 옆 동네 예민 보스 직장 상사의 거친 언행에 지쳐가는 어린 부하직원들, 말하는 본인이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해줄 것도 아니면서 상대방의 결혼을 아무렇지 않게 아주 당연한 듯 종용하는 주변인들에 스트레스받는 결혼 적령기의 사람들이 그렇다. 하나하나 나열하면 끝이 없을 정도로 우리 주변에서는 아직도 개별성을 인정받지 못해 남에게 피해 보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 모든 건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못할뿐더러, 각각의 인간들의 개별적인 존재를 인정하지도 존중하지도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요즘에는 덜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일어났었던 일들이기도 하기에, 저 인간은 나를 나로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적이 있었기에, 각각의 인간을 개별 주체로서 바라봐야 한다는 나의 평소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태도를 지닌 자코메티에게 끌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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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인지라 인간관계에서 부족한 것에만 얘기한 듯싶지만 사실 개별 주체를 인식하는 태도는 비단 인간관계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간 대 인간을 넘어서라도 인간과 사물, 인간과 동물, 인간과 현상 등 인간과 세상에서 맺어질 수 있는 모든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중요하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사물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사물의 외형적인 생김새와 생김새로 비롯되어 인간들끼리 정한 그것을 부르는 소리 정도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물을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면서부터 진정으로 사물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사물을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 공간(세상)에 퍼진 그것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게 되고 개별적인 존재가 내뿜는 무언의 존재감을 알아챔에 따라 사물과 나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세상에 홀로 서있는 사물의 외로움, 고독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사물의 존재와 고독을 알게 된 우리는 개별로써의 사물이 품고 있는 존재 가치를 느끼게 된다. 내 앞에 있는 존재와 나의 존재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존재감으로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가치 있게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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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주체를 인식함으로써 존재 가치를 느끼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태도가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개별 주체들을 존중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아직도 사회는 존중이 앞서지 못해 생기는 일들로 가득하다. 욕하고, 비아냥대고, 차별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동들은 상대방을, 상대방의 존재를 진심으로 존중한다면 쉽사리 행동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고독을, 고독의 아픔을 단 한 번이라도 느껴본 존재가, 고독함을 간직한 다른 존재를 함부로 대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가치를, 고독을 발견하고 상호 간에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만으로도 개별 주체를 인정하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주네는 자코메티와 카페에서 있었던 작은 일화를 소개하며 그도 역시 이와 비슷한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코메티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 불쌍한 아랍 남자가 자신을 다른 모든 사람과 같아지게 하면서 또한 세상의 그 누구보다 소중하게 만드는 것을-분노와 격노로-간직한 채 지켜 가고 있음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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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의 삶의 태도가 주네에게 큰 영감을 주어 작은 책 한 권이 만들어졌듯, 그의 태도가 과연 나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래서 이번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해 보았다. 세상이라는 큰 덩어리에 집착하기보다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개별적인 존재들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결국 세상이라는 것도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개별적인 존재들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자코메티에 따르면 그 개별적인 존재들이 간직하고 있는 고독으로부터 그들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개별의 주체들에 집중하고, 개별성을 존중하고 인정함으로써 그것들의 고독을 찾아내 가치를 발견하다 보면 언젠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숲을 보기 어렵다면 숲을 바라보지 말고 나무를 봐야 한다는 사실처럼, 세상의 이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각 개별의 주체들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자코메티처럼 말이다. 그런 그의 영향을 받아 나에게도 하나의 가치가 더해졌다. 세상을 한 단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나의 시도에 제법 잘 어울리는 대답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상을 관통하는 한 가지는 고독이 아닐까?  

고독.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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