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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디아블로와 버스 그리고 청춘

by 세자책봉 2022.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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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 이모탈 일러스트, 출처 하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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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3일,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이모탈이 출시했다. 2018년 블리즈컨에서 최초 공개한 이후 무려 4년 만이다. 한때 총괄 디렉터의 님폰없(님은 핸드폰이 없음?)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지만, 이번 게임 출시 이후 반응은 나쁘지 않은 듯하다(글을 올리는 시점에서 보니까 나쁜것 같기도 하다). 최초 시리즈부터 디아블로는 독보적인 세계관과 게임성으로 수많은 골수팬을 만들어냈으며 쿼터뷰 RPG를 본격적으로 흥행시킨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최근 게임사인 블리자드는 내부 직원의 성추문 사건, 앞서 언급한 님폰없 사건, 현재 서비스 중인 게임 운영 부재 및 그로 인한 주가 하락 등의 악재가 계속됐다. 이런 상황에서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이모탈의 출시는 좋지 않은 사내외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그 첫 번째 발판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가지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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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 이모탈의 출시와 더불어 오래 전의 일이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에는 디아블로 3가 유행했다. 어느 날 오전 수업이 끝난 뒤 점심도 먹고 공연곡 연습도 할 겸 동아리방에 들렀다. 이제는 고대 화석으로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동아리의 일원으로 얼마 전부터 동아리방에서 밤을 새 가며 디아블로3에 인생을 갈아 넣던 콩형이 나를 맞이했다. 콩형의 주변엔 찌그러진 맥주 몇 캔과 컵라면이 널브러져 있었다. 입가 주변으로 거뭇거뭇 자라난 수염은 콩형이 지난밤 날을 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는 한껏 충혈된 두 눈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던 콩형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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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오늘도 밤새신 거예요? 와 시즌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만렙 찍으셨네. 저도 버스 태워주세요 형”
버스? 알았어 태워줄게”
“오예”
“근데 버스 타면 게임이 재미가 없어, 혼자 처음부터 키워야 재밌지, 너도 혼자 키워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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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성황중인 디아블로 버스. 왼쪽부터 디아블로3, 디아블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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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에서 버스는, 고렙 유저가 저렙 유저와 파티를 맺고 레벨업과 템파밍을 도와주는 행위를 뜻한다. 다시 알아보자. 우리 사회에서 버스는 이용하는 승객을 지정된 목적지에 이를 수 있도록 운행하는 대중교통 중 하나다. 디아블로에서 버스는, 말 그대로 저렙 유저가 버스에 앉아 있으면, 버스 기사인 고렙 유저가 몬스터를 전부 잡으며 맵의 끝까지 편안하게 데려다주는 행위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우리가 대중교통 버스에서 주변의 교통상황을 신경 쓸 필요 없이 목적지까지 잠을 청하거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디아블로의 저렙 유저들은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고렙 유저 덕분에 어려운 난이도의 사냥터를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고렙의 유저는 저렙의 유저를 위해 버스를 운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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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렙 유저가 버스를 운행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템파밍의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다. 디아블로의 파티원 수는 최대 4명인데, 인원이 많을수록 고급 아이템의 드롭 확률이 올라간다. 가끔은 고렙 유저가 버스를 타는 저렙 유저에게 특정 아이템이 드롭될 경우 자신에게 달라는 조건을 내 걸고 버스를 운행하며 해당 아이템의 수집률을 올리기도 한다. 두 번째 이유는 게임을 어려워하는 뉴비들을 돕기 위해서다. 게임에서 초보자를 흔히 뉴비라고 한다.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거나, 혼자서 다음 단계를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뉴비들을 위해 고렙 유저들은 버스를 운행한다. 자기 캐릭터를 키우기도 바쁠 텐데 굳이 뉴비를 위해 버스를 운행하는 이유는, 뉴비의 이탈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다. 고렙 유저가 뉴비의 성장을 돕게 되면, 이들을 게임에 어느 정도 연착륙시킬 수 있고, 결국 이들이 게임에 참여할 확률이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뉴비들을 향한 측은지심과 영웅심리 그리고 게임에 뉴비가 등장했다는 설렘 때문에 버스를 운행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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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사망원인통계 결과, 출처 하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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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2017년을 제외하고 2021년까지 무려 17년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연도별 총 자살자 수는 약 13,000명 수준으로 하루에 약 35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으며, 약 41분에 1명씩 자살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2021년 9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년 사망원인 통계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0대~30대 사망원인 1위 역시 자살이라는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 미래의 산증인이 될 청춘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는 통계적 사실은 사뭇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놀랍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대로라면 당장 국가의 존속 여부에 대해서 논의해야 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한국생명존중 희망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대표적인 자살 원인으로 정신적 문제, 경제적 문제, 육체적 문제, 가정 문제, 직장 문제 등이 있다. 그중 특히 정신적 문제는 34.7%로 자살 원인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청춘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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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블로 얘기를 하다 말고 청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청춘이 죽는 과정이 디아블로에서 버스를 타던 뉴비가 게임을 접는 생리와 상당히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이 있다.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게임을 시작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버스를 탔던 뉴비라면, 버스를 타지 않고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순간까지 버스를 타기 마련이다. 그만큼 버스는 뉴비 친화적이고, 성장 시간을 줄여주고, 무엇보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계속해서 버스를 탈 수 있는 뉴비들은 버스 기사님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 없이 많은 것을 누리며 편안하게 게임을 할 수 있다. 문제는 매번 버스를 탈 수 없는 뉴비들이다. 꾸준히 도움을 주는 버스 기사님을 구할 수 없는 이들은 결국 애매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이 가진 것으로는 클리어할 수 없는 높은 난이도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높은 난이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도망치거나 죽는 것뿐이다. 아니 그러면 게임 난이도를 낮춰서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다. 사실 난이도를 낮추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들은 버스를 타며 누리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난이도를 낮추면 아이템 드랍률이 줄어들고 몬스터 경험치가 줄어들어 성장에 필요한 시간이 매우 길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버스를 타지 못하게 된 뉴비는 버스를 탈 때보다 자립을 위한 시간이 몇 배는 더 필요하게 된다. 이미 버스를 한 번 이상 경험했던 뉴비들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버스를 계속 타는 사람이 부럽고, 그들에게 박탈감을 느낀다. 그들과의 격차는 이미 벌어졌고, 그들을 따라잡기에 앞으로의 필요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도 두렵다. 특별히 게임을 해야 되는 이유를 찾지 못한 뉴비는 게임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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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접는 뉴비처럼 현실 사회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우리 사회의 청춘들이 하나 둘 인생을 접고 있다. 사실 어느 정도 수준이 높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버스를 타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 사회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노력해서 다 같이 만든 것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런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해당되는 사람은 손을 내려도 좋다. 대부분은 어쩌다 보니 수준 높은 사회를 만든 이들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즉, 타인의 수준이 높은 거지 나의 수준이 높은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청춘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 사회의 밑천을 만든 건 기성세대이기 때문이다. 결국 든든한 뒷배가 없는 청춘은 자신의 성장이 충분히 이루어지기 전에 버스를 탈 수 없는 현실에 처하며 사회의 수준과 멀어진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자와 그렇지 못한 자, 버스를 계속 탈 수 있는 자와 버스를 탈 수 없게 된 자. 상대적 박탈감, 허탈감. 이들이 높은 난이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도망치거나 죽는 것뿐이다. 결국, 특별히 인생을 계속 살아야 되는 이유를 찾지 못한 청춘은 이들 사이 메울 수 없는 간극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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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겹겹이 쌓인 거품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변은 온통 자극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와 이해로 구성된 것들이 우리 주변을 구성하고 있다. 이렇게 쌓인 외면적인 거품은 이제는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흘러넘치고 있다. 그러나 청춘들의 내면적인 성장은 그렇지 못했다. 이에 우리의 청춘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하나 둘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관심사는 온통 외면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점점 더 빨라지는 사회 변화 속도에 비해 내면적인 성장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대로 청춘의 죽음을 지켜만 봐야 하는 것인가. 청춘의 정신적인 고통을 덜어줄 수는 없을까. 어떻게 하면 청춘의 내면적인 성장을 도울 수 있을까. 청춘을 위한 철학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이 있긴 한 것인가. 2022년의 우리는 아직도 니체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쓰러져가는 청춘을 위해서라도, 경제성장을 위해 줄곧 미뤄오던 시대의 정신에 대해, 철학에 대해 이제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짧은 글을 마친다.  끝.

 

▶ 사진 참조 : 블리자드 공식 홈페이지

▶ 사진 참조 : 디아블로 인벤

▶ 사진 참조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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