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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내가 도둑맞은 물건

by 세자책봉 2022.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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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3. 27. 내가 도둑맞은 물건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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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애플만큼 애증관계에 있는 브랜드도 없다. 때는 바야흐로 고등학교 1학년.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6월 어느 날의 일이다. 나는 얼리어답터를 표방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중학생 시절부터 꽤나 다양한 전자기기들을 섭렵해오고 있었다. 당시 유명했던 브랜드로는 한때 전자사전으로 유명했으나 유행이나 기술이 점점 뒤떨어지고 있던 샤프, 대표작인 미키마우스 MP3를 비롯해 전자사전과 MP4로 이름을 날리던 아이리버, 9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했던 PMP 끝판왕 코원 등이 있다. 아, 무언가 빼먹은 게 있는 것 아니냐고? 그렇다. 이 시절 오늘날 십만전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삼성의 브랜드인 옙(YEPP)에서 만든 MP4를 뛰어넘어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이목을 끌던 아이팟 터치는 얼리어답터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던 기기 중에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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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그 시절 아이팟 터치 3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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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엄마를 어떻게 구슬렸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는 주말에 당시 대전 갤러리아 백화점 지하에 있는 애플스토어에 나를 데려갔고 별말 없이 아이팟 터치를 사줬다. 그것도 무려 32기가 용량을 말이다. 동시대 비슷한 기능을 품고 있던 기기들이 최대 8기가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크기의 용량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내가 엄마한테 무어라고 얘기를 했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도 기억이 안 나신단다. 하도 많이 사줬단다(잠시 눈물 좀 흘리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분명 열심히 공부하라고 사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났을까. 기숙사에서 아이팟 터치를 잃어버렸다. 자기 전 분명히 머리맡에 있는 충전기에 연결시켜놓고 잤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없어져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벌어진 입을 다물기가 이리도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는 도둑이었다. 이불을 개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도대체 떠오르지 않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지만, 아이팟 터치는 기억 속 위치에 없었고 그것을 잃어버린 당사자는 같은 방에서 생활하던 8명 중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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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사막에서 바늘 찾기인 상황이 벌어졌다. 내가 혼자 기숙사를 이리저리 뒤지고 다닐 수는 없었다. 고작 1학년에 불과한 내가 어떻게 같은 시설에서 기숙생활을 하는 200명을 탐문하리? 선배들은 또 어떻고? 답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숙사 사감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사감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감님 옆자리에 있는 CCTV 화면엔, 밤이 되면 지나다니는 사람을 제대로 식별하기 어려운 화질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런 현실을 알고 있었기에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벌어진 일은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나는 무언갈 해야만 했다. 이 상황을 이겨내는데 최소한의 합리점을 찾아야만 마음의 짐을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감님과 여럿 의심되는 인물이 살고 있는 방을 이불속까지 뒤져가며 조사해봤지만, 역시나 찾아낼 수 없었다. 마치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듯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한 조각의 먼지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그저 일상을 살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CCTV가 사생활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분명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잃어봐야 정신을 차릴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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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범인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서 아이팟 터치는 지워졌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장차 대도(盜)가 될 자질을 여실히 드러내는 도적떼의 소굴에서 지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한테는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팟 터치라는 것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피했다. 엄마가 힘들게 벌어들인 돈을, 무가치하게 태워버렸다는 자책감에 너무나도 죄송스러웠다. 엄마는 지금까지도 내가 아이팟 터치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모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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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후 나는 한동안 애플 기기를 멀리했다. 여러 번 맞이할 기회가 있었지만, 반쪽 없는 사과 모양이나 지금은 고인이 되신 스티브 잡스의 얼굴만 봐도 도둑맞은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애플과의 관계가 아주 좋다. 지금도 내돈내산 아이패드로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꼭 그것 때문인 것은 아니지만, 애플 주식 사랑해! 다음 주엔 소고기를 들고 어머니를 뵈러 가야겠다.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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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참조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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