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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브런치와 함께 춤을

by 세자책봉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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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9. 28. 브런치 작가 선정 

다디단 꿈속에서 일어나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 문질러 흔들리는 진동센서를 잠재운다. 덕분에 같이 흔들리던 고막 안의 청세포들도,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 진동이지만 아직도 적응하지 못하는 정신도 제 상태로 돌아온다. 이미 충분히 떠오른 해가 비추는 창 밖을 보며 기지개를 시원하게 켠다. 쭉 쭉. 이때, 마치 팔 한쪽이 세상으로 떨어져 나갈 듯이 잡아당겨 줘야만 한다. 그렇게 잠을 방해하지 않을 수준의 절제된 움직임으로 인해 한껏 웅크려 있던 근육들을 제 자리로 돌려놓는다. 이제 몸은 마실 것을 찾는다. 이미 물은 시원하게 냉장고에 숙성되고 있다. 가끔 냉장고에 물이 다 떨어졌음에도 채워 넣지 못한 날이 있으면 이상하게도 시원한 물의 온도만큼이나 시원한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 것만 같다. 꿀꺽꿀꺽. 입 안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만큼, 아직 덜 깬 잠을 깨울 수 있을 만큼 시원한 물을 들이켠다. 후우. 물을 다 마시는 순간, 잠에서 깬 허파의 폐포들은 침묵 속을 지키느라 마음껏 할 수 없었던 호흡에 자유롭게 해방되어 환호하듯 한 호흡 크게 내쉰다. 지난밤 수면 상태에 이르러 충분한 시간만큼 꿈속을 헤엄치고 깨어나는 과정을 함으로써 몸은 수면욕에 포만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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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욕 다음은 배설욕이다. 어느 정도 수면에 대한 욕망이 없어지게 되면, 몸은 안에 있는 걸 뱉어내길 원한다. 자고 일어난 상태의 내 몸은 지난밤에서 아침에 이르기까지 나라는 인간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로 사용되고 남은 것들을 치우고자 한다. 벌컥. 화장실 문을 열어야만 한다. 누군가 이곳을 먼저 사용하기 전에 재빨리 쟁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이유는... 끄응...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여하튼 그 특정한 공간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줄만 하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다. 다행히 아무도 없다. 그렇게 나만의 해우를 천천히, 아직 제 움직임을 찾지 못한 장기들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열과 성을 다해 보낸다. 벌컥.
화장실에서 나온다. 이제야 내 주변의 것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시야가 넓어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정리되지 않은 옷가지와 널브러진 빨랫감, 읽다만 책과 어젯밤 마시다 만 반쯤 남은 IPA 맥주캔, 완전히 꺼지지 않은 채 졸고 있는 노트북. 결국 그곳에서 이루어진 비밀스러운 행동은 어제의 고된 노동으로 지난밤 스스로를 깊은 수면으로 이끌고 가 오랜 시간 치유하던 몸을 수면 위로 꺼내는 추진력을 얻는 행동이며,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존재로 바꾸어 놓는 데 성공한다. 우주선의 고체연료 투하 장면과 비슷한 것이 떠오르는 내 모습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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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프다. 지난날, 안에 들어있는 지난밤의 흔적들로 가득한 모든 것을 한껏 비워낸 몸은 새로운 에너지를 찾는다. 수면욕에이어 배설욕마저 충만해지자 제 차례를 기다리던 식욕이 나대기 시작한다. 갑자기 어이가 없다. 배가 고픈 게 의도적인 것인지 순수한 욕구 때문인지 헷갈리기만 하다. 몸이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나에게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몸은 그냥 먹을걸 원하는 것인가. 내가 진짜 배고프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긴 하던가?... 있던 식욕도 없어질 것 같아 깊은 생각을 멈춘다. 당이 부족한 탓인지 머리가 돌아가질 않는다. 당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조차 의도된 것이란 말인가? 안돼! 그만 생각해야 한다. 이러다간 식욕이 진짜 없어질 것 같다. 몸은 다시 냉장고를 향한다. 끼익. 어디 보자.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우유 듬뿍 식빵, 계란 두 알, 먹다 남은 버터 한 조각, 뜯어져 있는 봉지 속 체다 치즈 네 장과 하루 이틀 뒤에는 지방이 산화되기 시작하여 맛과 향이 쉬어버릴 것 같은 베이컨이 조금 있다. 오늘은 반드시 마트에 들러 먹을거리를 사서 오고 말겠다는 생각을 한편으로 당장 뭘 만들어 먹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어제는 간장계란밥을 먹었기에 무언가 다른 걸 먹고 싶다. 이미 해는 내 눈높이까지 올라와 있기에 고민의 시간은 길어지면 곤란하다. 결국 한 가지가 떠오른다. 그래! 오늘은 브런치로 에그 토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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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에너지를 원했고 먹을 것을 원했다. 그리고 브런치로 에그 토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에그 토스트를 만드는 법은 어렵지 않지 않다. 그렇지만 이미 에그 토스트를 만들어 먹기로 한 순간부터 몸은 최대한 맛있는 에그 토스트를 원하기 때문에 충분한 마이야르 반응을 끌어올리기 위해 집중해야만 한다. 오늘이 아닌 먼 미래의 인간이 되고자 제 모습을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냉동인간이 되는 것처럼, 그동안 미래였던 오늘 이 순간만을 위해 식재료의 모습을 유지하고자 냉장고의 추위에 방치되던 재료들은 이제 곧 활기를 얻게 될 것이다.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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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냉장고에서 제 한 몸 추워 신선함을 유지하던 식재료를 꺼내 준다. 식빵, 계란, 버터, 치즈, 베이컨
  2. 설거지를 한다. 이미 설거지가 되어있는 상태라면 이미 당신은 니체가 말하는 '초인'임에 틀림없다.
  3. 인덕션의 제일 큰 화구에 프라이팬을 올린 후, 인덕션의 전기저항에 전기를 공급해준다.
  4. 달궈진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계란을 써니 싸이드 업으로 만든다. 있어 보여야 한다 무조건.
  5. 계란을 잠시 빼놓고 팬에 버터를 한 스푼 넣고 빵을 굽는다. 버터가 빵 사이사이로 잘 녹아들어야 한다.
  6. 양 면으로 잘 구워진 빵을 꺼내 놓는다. 이때 빵이 기름을 대부분 흡수해 팬에는 기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7. 베이컨을 팬에 굽는다. 베이컨의 기름이 빠질수록 스스로의 기름으로 서서히 튀겨져, 마이야르 반응이 제대로 온다.
  8. 다 했다. 잘 구워진 빵 위에 튀겨진 베이컨을 올리고 체다 치즈 한 장과 써니 싸이드 업으로 조리된 계란을 올린다.
  9. 치즈는 식재료에 남아있는 잔열로 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끝.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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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가해진 열로 새활력을 얻은 음식이 채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침샘에서 침이 솟아나고, 넘치는 침샘을 달래려 혀가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한다. 입 안에선 음식을 받아들일 준비로 분주하다. 아직 음식을 먹지 않았음에도 먹을 거라는 기대감에 식욕이 이미 충만한 것 같다. 갑자기 눈앞에 음식을 마주하는 시간만큼 신성하고 경건한 시간이 없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런 생각은 3초를 못 간다.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배가 부른 것 같다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에 분노한 식욕이 최대로 내 몸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자극에 못 이긴 양 손은 각각의 재료들이 마치 원래 하나의 것이었던 듯 차곡차곡 쌓아져 있는 에그 토스트를 집는다. 딱 딱. 위·아래 이웃으로 지내던 이가 서로 부딪히기 시작한다. 턱이 들어올 에그 토스트를 에너지로 만들기 편하도록 잘게 부수기 위해 신호등에 걸려있던 자동차가 서서히 출발하듯 천천히 저작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음식의 크기에 놀란 입은 제 형태를 찢을 듯이 크기를 키운다. 입의 행태에 놀란 코도 제 구멍을 있는 힘껏 키운다. 쯔와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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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롭기만 한 식욕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기관들이 춤을 춘다. 침샘, 혀, 이, 입, 코, 턱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힘찬 몸짓을 선보인다. 쯔와압. 한치의 오차도 없는 그들의 조화로운 움직임은 BTS보다 간결하고 부드럽기까지 하다. 계속되는 춤에 방금 잠에서 깬 정신이 아득해져만 간다. 쯔와압. 하지만 아직 부족한지 식욕이 자극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쯔와압. 후아. 잠자코 있던 폐가 저작운동으로 과열된 몸에 숨을 고르기 위해 한 호흡 크게 내뱉는다. 드디어 다 먹었다. 가장 격렬하고 처절한 몸짓으로 마지막 한 조각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동작을 보이자 식욕은 당황스러운지 어쩔 줄 몰라한다. 하지만 잠시 후 한껏 제 몸을 부풀렸던 식욕이 전율을 느끼고 만다. 전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선 먹는 것을 멈추고 잠시 숨 돌릴 시간을 주어야만 한다. 그렇게 충분한 포만감으로 전율을 느낀 식욕은 그간 먹을 것을 달라며 이리저리 나대던 자신의 나댐이 창피한 듯 재빨리 자리를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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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마이야르 반응으로 한껏 '맛짐'을 부린 에그 토스트로 구성된 브런치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브런치를 마지막으로 수면욕, 배설욕, 식욕 모두를 만족한 몸은 어제의 고단한 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 상황은 아주 자연스럽다. 고통 뒤엔 죽음이 아닌 이상 행복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몸은 이제 여유를 되찾고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몸은 모든 기관들이 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을, 좋은 기운이 몸에 가득하다는 것을 느낀다. 모든 것이 완벽한 몸은 자유를 갈망한다. 행복감과 여유로움에 들뜬 채 자유로움을 찾아 제 몸을 이리저리 뒤틀기 시작한다. 세상의 중심을 향해 왼손을 쭉 뻗는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처럼 위로 휘젓다가 어느 순간 구속을 놓아준다. 허리와 엉덩이가 손짓을 따라 자연스레 합류한다. 이번엔 오른손을 오른쪽으로 멋지게 편다. 왼다리가 오른손의 동작에 합을 맞춰 움직이기 시작한다. 왼발 끝이 날카롭다. 다음은 양손이 모였다가 풀어지기를 반복한다. 다음은 양손과 어깨가, 다음은 오른 다리, 다음은... 온몸이 합세하여 뒤틀림에 동조한다. 점점 기괴한 몸짓들이 모여 하나의 선을 이룬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몸짓들이 조화를 이루자 틀이 갖춰지고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한다. 어느새 몸은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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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Brunch 지원 글 전문.

안녕하세요. 이런 사람도 있다. 세자책봉입니다. 현재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곧 서른 살을 눈앞에 둔 메카닉 엔지니어링 업계 종사자이기도 합니다. 1년 조금 넘은 기간 동안 다양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빛, 자연, 색이 풍부한 시골에서 태어나 역마 가득한 인생으로 무르익은 감성에 차갑고 무뚝뚝한 공대 감성이 더해진 제 안의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잘 쓰인 글로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한 가지의 발차기 동작을 수천번 한 사람이 더 무섭다는 이소룡의 말처럼, 꾸준하게 정진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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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콘텐츠는 독서 후 짧은 글쓰기와 일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은 자유롭게 읽습니다. 독서를 통해 책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주로 책으로부터 소재를 얻고 그 소재에 관련된 저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상 이야기의 주제는 대부분 느닷없이 떠오르는, 정리되지 않았거나 또는 쉽게 정리할 수 없는 인생 전반에 대한 고찰들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떤 현상의 이면을 다루고자 합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던 이야기로, 읽고 싶어지는 글, 공감되는 글, 관통하는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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