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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약속이 아니라 실적이다, 그레이엄 앨리슨 <리콴유가 말하다>

by 세자책봉 2023.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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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세기 동안 나는 많은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그 가운데 어느 누구도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리콴유만큼 내게 가르침을 준 사람은 없었다.
- 헨리 키신저(전 미국 국무장관)

오늘날 싱가포르를 있게 한 건국의 아버지이자,
전 세계 정치인들이 찾던 '싱가포르의 현인' 리콴유의
오늘날 글로벌 이슈들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 


누가 No.1이 될 것인가?
중국인가, 미국인가?

<리콴유가 말하다>

2023. 03. 05. 일요일 아침이면 도서관에 들러 커피를 마시곤 합니다. 커피는 2,500원입니다. 좋죠?


차례

제1장. 중국의 미래
제2장. 미국의 미래
제3장. 미-중 관계의 미래
제4장. 인도의 미래
제5장. 이슬람 극단주의의 미래
제6장. 국가 경제 성장의 미래
제7장. 지역정세와 세계화 전망
제8장. 민주주의의 미래
제9장. 리콴유의 세계관과 원칙
제10장. 맺는말


 저자 소개


지은이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

하버드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과 경제학 석사학위,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1989년까지 하버드 케네디스쿨 학장직을 맡으면서 수많은 석학과 정계 인물들을 배출하는 세계 최고의 정치행정대학원으로 키워놓았다. 그 후 1995년부터 2017년까지 하버드대학교의 벨퍼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국가 안보 및 국방 정책 분석가로, 특히 핵확산과 테러리즘, 그리고 정책 입안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레이건과 클린턴 정부 하에서 국방장관 특보, 국방부 차관보를 지내면서 미 국방부에서 주는 공로훈장인 최고시민 훈장을 두 차례나 받았다. 여러 국방장관의 정책자문위원으로 일한 바 있으며 현재 국무장관, 국방 장관, CIA 국장의 자문위원직을 맡고 있다. 또한 국제원자력기구 위원회, 대량살상무기 확산 및 테러 방지 위원회 등 각종 공공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첫 책 <결정의 에센스>는 출간된 이래로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라 45만 부 이상 팔렸고, 2013년에 로버트 블랙윌과 함께 쓴 책 <리콴유가 말하다> 역시 미국과 해외 각국의 베스트셀러가 된 바 있다. <핵테러리즘>은 뉴욕타임스 선정 2004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예정된 전쟁>은 출간되자마자 전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가의 기본 법칙으로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의 정치 조직 구성과 정치 작용 원칙을 세우며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거나 형성하는 최고의 규범, 바로 헌법이다. 이처럼 법은 있다. 법은 우리의 삶을 규정하며,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준다. 법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에게 세상에 대한 가이드를 주는 지도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 중 누구도 길가에 서있는 가로수처럼 법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없다. 그 이유는 법, 또는 법에 기반한 제도 같은 것들의 본질이 사실 신앙과 같기 때문이다. 이는 책 <사피엔스>에서 '국가'라는 개념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언급한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하라리의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법에 따라 규정속도를 지키고, 제도에 맞게 부동산을 구입하는 우리는 사실상 신앙처럼 믿고 있는 법과 제도의 우월성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신도나 다름없다. 그만큼 법은 믿음에 기반한다. 법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회 적정성에 대한 요구, 그러니까 사회가 안정적이고 적당히 굴러갈 수 있는 수준의 적정 선이 필요하고 우리는 그것을 법과 제도로써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토록 발전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법과 제도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적이거나 최소한 국가 체계라는 것이 잡혔을 때 가능한 일이다. 혹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작중 배경처럼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불안정한 사회 예를 들어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해 자신의 생사에 대한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거나 그에 준하는 위협적인 분위기의 사회라고 한다면, 과장되게 표현해서 야생 또는 야만 그 자체의 시대라고 한다면 신앙은 아무런 현실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신앙이 지배하는 세계라고 상상한다면 신앙 자체가 이미 법을 자아내고 있기에 더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다.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고, 사냥하며 살 길을 개척하는 게 생존에 유리할까? 앉아서 기도를 하는 게 생존에 유리할까? 말하지 않아도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의 조국에는 그렇다 할 군대가 없고, 그 어떤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체계도 없어 주변국가에 의해서 언제 침략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나는 이 국가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다. 살아남는 것이다. 그 어떤 핑계나 불만도, 심지어 슬픔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법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살아남은 뒤에서야 가능하다. 바로 이것이다. 살아남아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라도 있다면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다.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이 있으면 해야 한다. 결국 실용주의는 인간의 생존본능과도 같은 삶의 태도이며, 이것이 바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인 리콴유가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제일 강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
 
현대시대에 생존의 형태는 과거와는 조금 달라졌다. 살기 위해 살아가던 과거와 달리 현대에 ’사는 것‘은 기본 전제가 되었고, 사람들은 이제 삶의 질에 관심을 쏟으며 당장 내일의 생존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실용주의 역시 그에 따라 변모했다. 생존하기 위한 목적을 우선으로 판단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더 잘 살기 위한 목적을 우선한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 회사에 있는 물티슈를 꽤나 당당하게 들고 집으로 향하는 철부지 부장님을 목격한 적이 있다. 실제 성격이 철부지 같아 별명이 철부지다. 그 당시 나는 물티슈를 가지고 가는 행동에 대해 '아 도대체 왜 저럴까?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다. 충분히 돈을 벌 만큼 버는 사람이 어째서 본인 것도 아닌 회사의 비품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부장님의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나는 누군가 내게 회사에 있는 커피믹스를 집으로 가져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민하지 않고 '상관없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내 생각에 이것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 커피를 가져가는 것이 도둑질이나 횡령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다면 한다는 의미에서 실용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선이 정확히 어디까지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보통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도덕적 혹은 도의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적당한 선을 넘어간다고 생각되면 어떤 식으로든지 그것들을 표출한다. 또한 때에 따라 그것이 사회에서 정한 규칙에 따라 도둑질로 판명되어 횡령죄로 처벌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회사에 있는 커피믹스를 집으로 가져가는 문제는 법과 제도의 문제 이전에 도덕과 도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고, 적당한 선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커피믹스 한 개를 집으로 가져갔다. 이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커피믹스 두 개를 집으로 가져갔다. 이게 문제가 되는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으로 구성원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었을 경우이거나 그것이 법적다툼으로 이어질 경우이지, 본인이 누릴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누리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가 스스로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는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또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실용적인 삶을 추구할 수도 있다.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저녁을 먹은 뒤에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스타벅스 커피값 5,500원이 너무 비싸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500원짜리 캡슐커피를 뽑아서 집으로 가져왔다. 이것은 횡령인가? 이것은 개인이 돈을 주고 먹을 수 있는 것을 회사 것으로 대체해서 먹는 마음가짐의 문제인가? 혹은 두 커피의 가치는 상호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되는가? 아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 보자. 개인이 회사에서 뽑아 먹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뽑아먹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는 것도 전혀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의문이 생긴다. 왜 누릴 수 있는 복지 혜택 같은 것을 스스로 못마땅하게 여겨 그것을 최대한도로 누리지 않는 것인가?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 좋다. 그런데 왜 회사에서 이미 제공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인가? 더 나아가 도대체 언제부터 노동자들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회사의 편을 들게 된 것인가? 이제 감히 잡힐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이건 횡령이나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회사를 얼마나 더 잘 이용하는지에 대한 실용의 문제인 것이다.


나는 가끔 이토록 작은 것도 회사에서 누릴 줄 모르는 이들이 도대체 사회에서는 무엇을 누리려고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면서 또 당장의 보상만큼은 최대한 많은 것을 원하는, 이런 앞만 보고 뒤를 볼 줄 모르는 바보 같은 태도가 도대체 왜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정말 아찔하다. 명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의 두뇌로서는 오직 한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결코 절실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제공하는 커피를 마시는 어른들이 간혹 외부에서 커피를 사 오는 젊은 직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금 당장의 여유가 없어서 사 먹지 않는 게 아니라. 그들이 그동안 그만큼 절실한 태도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경제적 성장을 이루고, 사회적 체계를 만들고, 자기 자식들을 키워야 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아끼는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것을 누리지 않고 굳이 자기 돈을 들여가며 커피를 사 오는 젊은 이들을 이상하게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삶의 태도는 개인의 성패나 성취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 나는 젊은 세대가 부모님 세대보다 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일정 부분 맞는 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것은 젊은 세대들이 부모님 세대보다 잘 살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그들이 과거 부모님 세대만큼의 삶에 대한 노력이나 절실함이 있는지가 더 큰 문제다. 회사에 있는 커피를 가지고 가는 것은 선을 넘으면 당연히 위법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던 악착스러움, 성취해야 할 목표를 이루고자 커피 한 잔의 값을 아끼기 위해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삶의 의지, 바로 절실함이 있는지 여부다. 꼰대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겨우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4년 된 평범한 90년대생에 불과하고, 이것은 결국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며 숙명일 뿐이다. 세상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적당히 누리는 사람들은 적당한 인생을 살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누리는 사람들은 최대의 인생을 살 것이다.


모두가 찬양하는 사람은 없듯이,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국부로 불리면서도 권위주의적이었던 정치 스타일로 인해 평가가 엇갈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민들이 그런 논리를 펼칠 수 있는 것 자체가 실은 세상이 좋아졌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살고자 마음먹은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죽고 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만약,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독립한 뒤 국가를 재건하지 못해 말레이시아가 무력으로 싱가포르를 점령했다면 당신들은 그런 말조차 꺼내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또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실용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법과 제도를 벗어나는 일을 해도 된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그것들은 지금의 사회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 근간이 되는 것들이므로 지킬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다만, 현대에 발생하는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그것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들을 이제 세상의 주역이 될 우리가 바꿔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말 자신 있다면, 정말 하고 싶다면, 사회가 만들어낸 법과 제도를 어기면서라도 할 수 있다면 해보라고. 어차피 우리가 하는 일들의 99%는 법과 제도를 어기지 않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며, 만약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무시하는 행위를 할 것이라면 그만한 책임을 질 각오를 하면 된다고.

 
하고자 마음먹은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야 하는 것이다. 해내지 않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당신이 만약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다면, 결코 법과 제도는 당신을 가로막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들은 당신의 뒤를 받쳐줄 것이며, 당신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줄 것이다. 만약 그것들을 침해하거나 그렇게 할 것 같으면 그에 따른 변화된 조치를 취하면 된다. 걱정할 것이 없다. 당신은 해내면 된다. 제발!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절대자에 굴복하지 말고, 그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지 말고, 현실로 나와 살아가길 바란다. 진심이다. 당신의 절대자는 오로지 당신뿐이다.
 
실용은 다른 것이 아니다. 실용은 살고자 하는 간절함에서 비롯되는 삶의 태도다. 이것이 내가 리콴유에게 배운 '실용'이다. 책 '리콴유가 말하다'를 추천한다.

 

▷ 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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