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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진정한 나를 찾아서(Find My True Self)

by 세자책봉 2022.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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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17. 몰려오는 두통과 함께한 야간 산행 - 서산 옥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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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괴팍한 곳에 있던 지난 3년을 되돌아본다. 그곳은 인간이 현현한 이 세상엔 스스로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매일매일 벌어지는 새로운 일들로 가득했다. 충만했던 존재의 이유가 어느덧 불완전함에 침식당해 낭떠러지로 몰리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었던 하루를 보내기를 반복. 그곳은 저녁에도, 주말에도, 공휴일에도 울리던 휴대전화를 손으로 쪼개버리고 싶을 만큼 인간에 대한 존중과 권위는 각자의 이기심에 의해 잊힌 섬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인간의 권위 따위는 이미 건축물의 지반을 다지는데 콘크리트와 같이 파묻혀버렸음을 수 번이나 짐작했다. 당연히 최소한의 정당한 권리는 요구할 수 없었다. 때로는 이곳에는 인간이 있기에 기계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기계가 있기에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선순위를 매기던 비상식이 주류의 문화를 이루고 있음에 역겨움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엔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이끌어가던 존재들이 있었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전우’라는 표현이 작금의 군대에서보다 더 잘 어울리는 별들이 있었다. 불완전함이라는 두려움에 추악한 민낯만을 내보이던 인간들 속에서도 한없이 빛나는 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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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면 마치 심장이 멈춘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난 늦은 밤에도, 별들은 빛나고 있었다. 별들은 언제라도 각자의 일상을 포기했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별들은 항상 서로를 도왔다. 다른 별의 자리는 서로의 자리였다. 별들은 믿음으로 가득했다. 그곳에 없던 인간 존중과 권위는 별들 서로에게만큼은 존재했다. 파도에 흔들릴 때, 낭떠러지로 다가갈 때, 스스로에게 어둠을 곁에 두려고 할 때마다 별들은 서로 손을 내밀었다. 맞닿은 손에서 풍기는 따뜻한 온기는 꺼져가던 별빛을 다시금 충만하게 해 주었다. 별들은 서로를 의지했다. 불완전함으로 가득한 어둠 한가운데 별들은 완전히 존재하는 듯했다. 빛을 바라보는 코펜하겐의 해석처럼 별들은 서로의 존재의 의지와 상호작용 했고, 서로의 곁에 있어줌으로써 각자의 존재를 증명했다.(코펜하겐 해석은 관측하기 전에는 여러 가지 상태가 존재하지만 관측하는 순간 빛의 상태는 더 이상 확률이 아닌 특정한 한 가지로 정해지게 된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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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은 태초에 우주먼지에 휩싸여 있었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 있는 듯하면 사라지고, 손에 닿으려고 하면 날아가버렸다. 모든 것은 실험적이었고, 수만 가지에 대한 확률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들은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했다. 이른 아침 희뿌옇게 가라앉은 안갯속을 어쨌든 헤쳐가야만 했다. 때로는 성공하기도,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는 선택의 선택을 반복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에 어린 별들은 자주 빛을 잃기도 했다. 가끔은 어떤 궤도인지 알지도 못하는 혜성이 다가와 움푹한 크레이터를 만들기도 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별들에게는 옅은 생채기들이 쌓여감에 따라 별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별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주변의 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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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너머, 우주먼지를 너머 별들은 서로를 강렬하게 원했고 그 간절함에 응하듯 별들은 서로에게 닿았고 서로와 연결되었다. 강렬했던 태초의 빛의 의지를 품고 있었으나 이미 반백년 이상 타올랐기에 그 강인함은 여전하나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듯 줄어가는 열기를 간직하고 있던 별들도, 이제 막 별이 되어 주체할 수 없는 끓어오름으로 머나먼 우주 어디쯤 도달하게 될는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한 빛을 내뿜던 별들도 이곳에서는 태양 앞에 늘어선 별들만큼이나 조화로웠다. 서로는 서로에게 조력자였고 선구자였다. 별들에게는 어떠한 우위나 시기가 없었다. 이미 그것의 의미가 허용되는 관계에서 한참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굳이 우위를 사용해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가 없을 만큼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충만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별들은 한껏 빛을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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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름 모를 덫에 붙잡힌 채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던 시간이 꾸역꾸역 하루를 삼키고 있었던 탓이다. 이제 별들은 한 곳에 나란히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가장 큰 별이 성운의 부름으로 가장 먼저 이곳을 떠나야 했다. 큰 별이 그곳에서 벌어지는 수 만 가지의 정황을 일순 판가름해 평정하던 모습을 성운도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남아있는 모두는 큰 별이 떠나는 자리를 숙연하게 지켰다. 마치 우주 폭풍이 불어오는 듯 지난날의 고된 추억이 별들 사이를 스쳤다. 슬픔이 차오른 몇몇의 별들은 제 안의 것을 주체하지 못해 곳곳에서 땅이 갈라지고 새로운 땅이 만들어졌다. 별들은 알고 있었다. 별들이 별로써 존재할 수 있었던 것에는 큰 별의 역할이 가장 컸음을. 큰 별이 떠나자 장렬했던 빛의 흔적은 싸라기가 되어 흩어졌고 큰 별의 빈자리에 펼쳐진 더없는 공허 속, 블랙홀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무한히 존재할 것 같은 태양도 언젠가 빛을 다할 날이 분명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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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별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별이 스스로 이곳을 나갔다. 제 몸집을 불려 더 큰 빛을 발하겠다는 목적이라고 했다. 큰 별과 이별의 충격이 아직 남아있던 터라 이번엔 주변을 둘러보기 힘들 정도로 슬픔이 몰려왔다. 하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 그동안 추억이 쌓인 우리의 관계는 분명 소중했다. 그러나 그 별이 그토록 원했던 공간의 이탈을 쟁취한 것에 아쉬움을 보이기보단 더할 나위 없는 축하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과정은 빈자리에 생긴 블랙홀만큼이나 외롭고 고독하다. 그 별이 열망하던 목표를 실현하는 것에 얼마나 간절하고 치열했는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오로지 본인만이 간직한 진심의 깊이를 누군가 함부로 가늠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별과 멀어지는 거리에 멀어질 관계를 떠올릴 것이 아니라 그 별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그 별이 맺은 결실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정당했다. 그렇게 하나 둘, 남아있던 별들도 모두 이곳을 떠났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그동안 가장 어린 별로 존재했던 나도 이곳을 떠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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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태초의 우주 먼지가 되었다. 서로를 증명해주던 별들은 더 이상 주변에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나 홀로 남아 먼지가 되어버린 현실이 조금은 슬프지만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는 우주의 질서처럼 이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지금도 별이 먼지가 되고 다시 별이 되는 과정을 수 없이 반복해야 큰 별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이제는 나름 익숙해진 그곳에서의 생활을 마음 편히 그대로 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익숙함을 거부했다. 날이 선 긴장도 익숙해지는 생활에 오랜 시간 찌들다 못해 고여버리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지난 3년간 창조의 에너지가 흘러넘치던 그곳은 더 이상 별을 탄생시킬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곳이 참 지겹고 지루했다. 물론 이곳이 편안하고 익숙했지만 이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이 감정의 마지막 종착지는 나태의 영역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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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토록 바라던 공간의 이탈을 행하려고 하는 한편, 마주한 현실에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음을 직감한다. 이제 겨우 온갖 역겨움과 더러움의 온상이던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는데 말이다. 목적을 이룬 자는 원하는 것을 얻는 자이며 동시에 원하지 않는 것도 얻는 자이다. 그들은 목적을 이룸에 기쁨을 얻지만 동시에 목적을 잃고 공허를 얻는다. 우리 주변의 최상위 포식자들이 슬럼프에 빠지는 이유가 대부분 그렇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잃은 것일까.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주말 오후에 뒷목이 시릴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문득 그곳을 떠올렸다. 그렇게 욕을 해대던 그곳에서의 생활이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별들이 서로를 증명했듯 실은 그곳도 나의 존재를 밝혀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결국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곳을 벗어나려 하지만, 그곳은 평생 나의 일부가 되어 존재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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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타오르는 불과 같던 청춘의 열정과 고통은 땀이 되어 나의 온몸에 흘렀고, 흐르는 땀으로 가득했던 지난 3년간의 기억은 이제 추억으로 피어오르려 한다. 나는 지금 기쁘고도 두렵다. 다시 한번 우주를 향한 더 큰 도약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확정의 영역에서 벗어나 온몸으로 불확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이 두렵다. 이제까지 행해왔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선택을 물리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우주의 질서를 깨트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나는 다시 별이 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주의 먼지로 남아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펼쳐질 모든 것이 두렵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겨내야 한다. 늘 긴장 속에 갇혀 지내던 이곳에서의 삶이 끝나려고 한다.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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