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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다, 조지 오웰 에세이 모음집 <나는 왜 쓰는가>

by 세자책봉 2022.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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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과, 인간의 본성과, 인간이 만든 제도에 대한 경이로운 성찰
인습과 관성을 거부한 삶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생각을 틔운 사람


조지 오웰이 쓴 가장 빼어난 에세이 선집

<나는 왜 쓰는가>

2022. 11. 11.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가 해주신 집밥을 먹고 왔습니다.


차례

1. 스파이크
2. 교수형
3. 코끼리를 쏘다
4. 서점의 추억
5.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
6.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
7. 마라케시
8. 좌든 우든 나의 조국
9. 영국, 당신의 영국
10.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국가
11.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
12. 시와 마이크
13. 나 좋을 대로
14. 민족주의 비망록
15. 당신과 원자탄
16. 과학이란 무엇인가?
17. 문학 예방
18. 행락지
19. 물속의 달
20. 정치와 영어
21. 두꺼비 단상
22. 어느 서평자의 고백
23. 나는 왜 쓰는가
24. 정치 대 문학: 걸리버여행기에 대하여
25.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26.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27. 정말, 정말 좋았지
28. 작가와 리바이어던
29. 간디에 대한 소견


저자 소개


지은이 조지 오웰 역자 이한중

영국의 작가·저널리스트.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 1903년 6월 25일, 인도 아편국 관리였던 아버지의 근무지인 인도 북동부 모티하리에서 태어났다. 첫돌을 맞기 전 영국으로 돌아와 명문 기숙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스와 이튼을 졸업한 뒤 대영제국의 경찰간부로서 식민지 버마에서 근무한다.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경찰직을 사직한 뒤, 자발적으로 파리와 런던의 하층 계급의 세계에 뛰어들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발표한다. 1936년은 오웰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인데, 그해 잉글랜드 북부 탄광촌을 취재하여 탄광 노동자의 생활과 삶의 조건 등을 담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썼고, 스페인에 프랑코의 파시즘이 발흥하자, 공화국편 민병대 소속으로 스페인내전에 참전하여 '카탈로니아 찬가'를 펴내면서, 자신의 예술적·정치적 입장을 정리해나간다. 대표작은 인생 후반기에 집필한 '동물농장'과 '1984'이지만, 그 두 소설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엄청난 양의 글을 쓴 그의 저술 중에서 빙산의 일각이라 할 만큼 적다. 이 책 '나는 왜 쓰는가'는 수많은 오웰의 에세이 가운데 가장 빼어나면서도 중요한 29편의 글을 역자가 뽑아 묶어낸 것이다.


과거를 떠올려보면 대체로 생각만 해도 행복하거나 그리움에 사무쳐 버릴 것 같은 순간들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는 법. 시간이 흘러가면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코 주어진 시간을 그대로 소모해버렸던 여러 지난날일 것이다. 시간을 소모했다는 표현보다는 무언가 딱히 의미 있는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랄까. 같은 시간에 누군가는 여행을 가고, 독서를 하는 등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것에 비해서는 그다지 의미 없는 행동을 했던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에게는 시간을 죽이는 시간마저 필요하다고 한다면 헛되이 보낸 시간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과연 지금 아쉽다고 느끼는 과거가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시간은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어째서인가 나의 몸과 머리는 시간이 간직했던 것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산물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음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모습 그 자체가 자신과 그 과거는 이어져 있음을, 시간의 지평선을 따라 흘러가는 나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그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이고, 이제와 그 시절에 대해 감히 논평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흘러 그것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이유에서다. 시간의 파편이 쌓인 과거의 산물이 지금의 나라는 것은 지금을 살고 있음에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룩한 진실을 앞에 마주하고도 눈을 질끈 감은 채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인간의 태도다. 누군가 과거에 분명 잘못했다고 생각했던 행동을 바로잡으려고 하기는커녕, 모든 것을 과거에 있었던 일들 탓으로 돌리거나 애써 관심 없다는 듯 흘려버리는 모습은 애써 감춰왔던 혐오증을 꺼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것에 대한 사례는 아주 흔하다. 과거에 성취하고자 또는 이루고자 했던 것들에 대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똑같은 생각만 할 뿐, 막상 도움이 될만한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간절히 원하는 척 자신의 모습을 포장하기에 급급한 부류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들이 하는 행위라고는 끼니를 잘 챙겨 먹거나 배설하는 것이 유일하다. 마음속엔 욕망을 향한 삐뚤어진 열정만이 가득 차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고 부정하기에만 몰두한다. 목표를 향한 어떠한 행위는 하기 싫고, 결과는 날름 가져가고 싶은 아주 고약한 심보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짓지 못한 채 현재의 자신을 찾지 못한다.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고, 부정하는 것은 결국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건만. 아무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러한 관념은 자신에 대한 것을 너머 외부 세계로 전이된다. 이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마저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니,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사실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해당 사안에 대한 사실관계는 자신에게 불리한지 유리한지에 따라 언제든 뒤바뀐다. 아주 나약하고 이중적인 인간의 모습 그대로다. 판단에 앞서는 것은 사실관계나 인과관계보다 각자도생의 문제고, 취향의 문제다. 마음에 들면 좋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싫은 것이다. 과거를 뒤바꿀 그 어떠한 생각이나 실질적 행동을 하지 않는, 모순적인 태도에서 출발해 그대로의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로 전이된다고 했지만, 전후관계는 어느 쪽이 앞서도 상관없다. 같은 맥락으로 지금 자신의 행동이 과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상 거짓말이다. 그냥 알면서 모르는 체하는 것이고, 유리한 모습만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세월의 가속에 힘이 실린 관성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이끌릴 뿐인 것이다. 물론, 자세한 내막이야 자기 자신만 알 수 있으니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탐지기를 돌려봐야 알겠지만, 그걸 굳이 확인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한편, 이는 세상에 태어나 자신에게 달린 시각 기관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존재라면 모두 객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단 그것이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세계를 향해 표출하는 아우성은 모두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비록 이유나 결과가 같다고 하더라도 표현의 주체는 모두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주관적인 이유가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객관적인 이유가 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없거나, 우리가 신이라고 하는 존재뿐일 것이나, 그것의 존재는 의심스러우니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다. 인간은 모두 주관적이다. 주관을 자제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것일 뿐이지, 인간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조지 오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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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이러한 인간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직업으로 먹고사는 본인은 그 누구보다 가장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감히 경찰 생활을 접고, 영국의 하층민 생활을 시작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흔히 그가 동경스러운 이유로 통찰 있는 필력을 꼽는다. 그러나 그가 존경받는 이유는 조지 오웰이 대상과 동참하고, 그것과 같은 삶을 살고, 직접 경험함으로써 그곳의 세계가 이루어진 근본적인 탐구를 했기 때문이다. 통찰이 나올 수 있는 이유도 이런 행위가 기반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는 르포 취재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곳이든 그들과 같이 두 발로 뛰길 원했다. 그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곧바로 바르셀로나로 넘어가 의용군으로 참전해, 인간의 향취가 가장 가까이 느껴지는 온상을 향해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하길 원했지만 오랜 지병인 폐병 탓에 참전은 못했으나, 보조 조직인 홈가드로 활동했을 정도다.

최근에 본 기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남기자의 체헐리즘’이다. 휠체어를 타고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체험을 직접 한다거나, 한쪽 눈을 가리고 다닌다거나 하는 식으로 남기자 본인이 불편한 현실을 직접 체험하며 겪는 내용을 다루는 기사로, 참 오랜만에 ‘이건 찐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정성 있는 기사였다. 비록 누구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함으로써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 겉으로 보이는 행동뿐만 아니라 그들의 진짜 속내까지 파악하고자 하는 기자정신으로 정말 실질적인 정보만을 전달하려는 남기자의 태도는 조지 오웰의 태도와 무척 닮아 있었다.

조지 오웰은 참 주관적이다. 나도 나의 시선으로 살아가듯, 그도 그의 시선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그는 자신이 주관적이며, 자신이 쓰는 글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 이것이 조지 오웰의 주관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다. 책 <나는 왜 쓰는가>는 자본주의이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온갖 거짓과 선동 글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그의 글에 대해 단 한 줄 평으로 마무리 짓으려 한다.

흘러간 시간만큼 응축된 경험을 가장 아름답게 발산하다.


 영국, 당신의 영국(England Your England)


영국은 부동산과 금융에 대한 지배력이 극소수에게 집중된 나라다. 지금의 영국에선 옷, 가구, 잘하면 집 외에는 무언가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농민은 사라진 지 오래고, 독립 상점주는 궤멸되어가고 있으며, 소기업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중산층의 사고방식과 습성이 노동계급으로 확산되는 일이다. 영국의 노동계급은 이제 거의 모든 면에서 30년 전에 비해 형편이 좋아졌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노동조합의 공로이고, 어느 정도는 자연과학의 발전 덕분이다. 한 나라의 생활수준이, 그에 상응하는 실질임금의 상승 없이 소폭이나마 올라간다는 건 늘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 문명은 어느 정도는 제 힘으로 스스로를 일으킬 수 있다. 사회가 아무리 부당하게 조직되어 있어도, 어떤 종류의 재화는 반드시 공동으로 소유하기 때문에 특정 기술의 발전은 전체에게 혜택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이제 점점 부자와 빈자가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게 되고 있다. 아울러 두 계층의 생활 방식 차이는 값싼 옷의 대량생산과 주택문제의 개선으로 줄어들고 있다. 겉모양만 놓고 보면, 부자와 빈자의 옷은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30년 전, 혹은 불과 15년 전에 비해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다.

 

간단 리뷰: 21세기 대한민국의 사회현상이 20세기 영국 사회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던 글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Looking Back on the Spanish War)


오늘날 일반 대중의 견해가 왔다 갔다 하는 묘한 현상은, 말하자면 수도꼭지 열리고 닫히듯 정서가 돌변하는 것은 신문과 라디오의 최면 탓이다. 한편 지식인들의 경우에는 상당 부분 돈과 한낱 신체적 안전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전쟁을 찬성하기도, 반대하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든 그들의 머릿속에는 전쟁에 대한 실제적인 그림이 없다. 물론 그들은 스페인내전에 대해 열광하면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죽는다는 게 불쾌한 일이란 건 알았다. 하지만 스페인 공화군 장병의 전쟁 체험은 아무튼 품위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웬일인지 이 전쟁의 변소는 악취가 덜 나고, 군기는 덜 짜증스럽다고 본 것이다. 우리는 너무 문명화되어 명백한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진실은 아주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종종 싸워야만 하고, 싸우자면 자신을 더럽혀야 한다. 전쟁은 악이며, 차악인 경우도 흔히 있다.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하며, 칼을 들지 않는 자는 악취 진동하는 병으로 망하는 것이다. 이런 케케묵은 소리를 굳이 쓸 필요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간 임대소득이나 이자로 먹고사는 이들의 자본주의가 우릴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간단 리뷰 : 저 멀리 유럽 대륙에서 펼쳐지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마치 전쟁영화 한 편 뚝딱 해치우듯 바라보는 경시적인 태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글

 

짧은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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