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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미래를 위해 산다는 것

by 세자책봉 2021.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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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16. 원산도 카페 - 바이더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기상,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 여느 때와 다름없는 퇴근을 반복하길 어느덧 3년.

 

그동안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굳이 내 의식의 존재를 떠오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익숙해졌고, 일상은 그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퇴근 후엔 주로 운동, 독서, 공부를 병행하며 자기 계발에 집중하는 편이다.

 

업무로 지친 정신과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또다시 집중하는 일은 정말 어렵지만, 알 수 없는 미래를 가만히 기다리며 자아를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기 때문이다.

 

퇴근 후 잠들기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네 시간 남짓.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어김없이 책상 앞에 앉는다.

 

요즘은 독서에 집중하고 있기에 읽던 책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편다.

 

아, 책을 읽기에 앞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집에 들인 스타벅스 원목 책상 위를 정리하고, B&O 스피커에 잔잔한 음악(요즘은 누자베스를 듣고 있다)을 틀고, 스탠드의 조명을 적당한 세기로 맞춘다.

 

책을 읽기 시작한다.

 

몇 페이지를 넘긴다.

 

집중을 해보려 하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PC 앞에 오래 앉아 있던 탓일까. 몸 이곳저곳이 쑤신다. 허리, 어깨, 목.

 

몇 페이지를 넘긴다.

 

앉았다가 일어섰다를 반복한다. 왼쪽으로 비틀기도, 위아래로 쭉 늘려도 본다.

 

몇 페이지를 넘긴다.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녀보지만 머릿속엔 개미 한 마리 들어있지 않은 것 같다.

 

텅...

 

다시 몇 페이지를 넘기다 집중력을 잃은 손으로 애꿎은 검은 화면만 휘적이는 내 모습. 괜히 노래를 바꿔본다.

 

이제는 더 이상 의미 있는 활자를 받아들이기 싫은 듯 시선마저 자연스레 창 밖을 향한다.

 

호수 공원의 력(力)에 끌린 듯 주위를 돌고 있는 다양한 차림의 위성들. 발걸음에 집중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

 

굳게 닫힌 페이지.

 

집중이 됐다가도 안되기를 수차례 반복. 어느덧 잠에 들어야 할 시간이다.

 

오늘도 네 시간 동안 집중한 시간은 겨우 한 시간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토록 시간을 허투루 쓴 것이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친구 만날 시간을 줄이고, 직원들과 회식하는 시간을 줄이고, 새로운 인연을 만날 시간을 줄여서 얻은 귀중한 시간인데.

 

열정이 줄어든 탓일까.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탓일까.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탓일까.

 

몰려오는 허무에 텅 빈 마음을 채워보려 손에 잡힌 검은 화면을 바쁘게 문지르는 나의 모습. 의미 없는 시선들.

 

어차피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해야 하는데,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무엇이 중요한가.

 

어차피 인간은 반드시 죽을 운명인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무엇이 중요한가.

 

허무가 뇌리에 꽂힐 때면, 머리는 생각하기를 멈춘다.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허무에 빠질 일은 없다. 허무와 죽음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해 추악한 모습으로 보내던 시절이 있었지만,

 

니체를 통해 한 번 구원받은 목숨에 죽음을 앞당길 정도로 세상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니.

 

다만,

 

찬 바람이 불어오자 끓어오르던 열정은 왜 얼어붙었으며 초대하지도 않은 나태함은 이미 내 피에 흐르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했을 뿐이다.

 

나는 그저 내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오늘의 시간을 그저 허무하게 소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다 보니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오늘과 내일이라는 단어가 연달아 연상될 때면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아저씨 - 전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얻은 숙소에서 12시쯤 TV를 켜면 나오던 영화. 참 많이 봤다.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 차태식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산다는 것만큼 고된 일은 없다.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 진화론적으로 생존과 직결한 진화 방향이었겠으나, 어차피 미래를 알 수 없는 건 변하지 않았다.

 

다가오는 미래를 '대비' 할 수 있을 뿐이다.

 

내일만 대비하는 사람은 오늘을 죽기 살기로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차태식의 말처럼

 

내일도 좋지만, 주어진 오늘을,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신경 써보는 것은 어떨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조그마한 반딧불이가 모여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인 저 밤의 들판을 환하게 비추듯,

 

차곡차곡 쌓인 오늘이 모여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 되리니.

 

짧은 글을 마친다.

 

▶사진출처: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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