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 하나에 추억과 즐거움을 간직할 수 있다면, 전영범 <천문대의 시간 천문학자의 하늘>

by 세자책봉 2023. 8. 31.
728x90

※ 천문학자이자 천체사진가인 전영범 박사의 천체관측 그리고 천문학자의 연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천문학을 공부하기 전에 배운 사진 기술 덕분에 천문대에 들어왔고, 어느 날 발견한 소행성과 변광성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천문대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 전영범(저자)

보현산 천문대에서 바라본 특별한 밤하늘
천문학자의 무한히 성실한 관측 기록

천체 하나하나에 담긴 우주의 이야기를 듣다

<천문대의 시간 천문학자의 하늘>

2023. 08. 27. 거대한 자연과 우주, 인류를 겸손하게 만드는 존재들


차례

1. 우주의 실험실

2. 천문학자의 발견 기록

3. 천체관측에서 천체사진까지

4. 밤하늘 관측 여행


저자 소개

작가 전영범

천문학자이자 천체사진가. 부산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천문학을 전공하고 '구상성단의 단주기 변광성 탐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발 1,124미터 보현산 정상에 천문대가 건설되던 1992년부터 지금까지 보현산천문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보현산천문대 대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변광 천체 탐색 연구를 하고 있다. 120여 개의 새로운 소행성을 발견해 최무선·장영실·이천 등 우리 과학자 10명의 이름을 붙였고, 1만 원권 지폐 뒷면에 있는 1.8미터 망원경의 도안 사진을 찍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홍보 및 교육용 천체사진 대부분을 촬영했으며, 보현산과 외국의 유명 천문대에서 찍은 천체사진·풍경 사진을 전시한 개인 초대전 '하늘과 땅, 그 속의 우리'를 갖는 등 활발하게 사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는 <천문대의 시간 천문학자의 하늘>, <십 대를 위한 우주과학 콘서트 우주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신나는 과학 이야기> 등이 있다.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천왕봉으로 가는 길, 해발 1500m 고도에서 본 새벽하늘은 그야말로 장엄했다. 잠시 숨을 돌리려 크게 호흡을 내쉰 뒤 바라본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안개나 구름 한 점 없는 아주 맑은 하늘이었다. 시골에 살 때를 제외하고 별을 이렇게 많이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제야 백무동에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오는데 불편함이 없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빛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깜깜한 등산길을 비춘 건 달도, 손전등도 아닌 별빛이었다. 태어나 별빛에 의지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건만, 오늘과 같은 풍경을 보니 과거의 조상들이 별빛에 의지해 길을 다녔다는 말이 새삼 거짓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의 삶은 대체로 시골이 그렇듯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시골은 대체로 모든 것이 느렸다. 농기구를 손에 쥔 채 구부정한 자세로 뒷짐을 진 어르신들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따르는 강아지들은 제 주인의 속도를 맞추느라 길가의 풀냄새를 한참이나 맡아댔다. 봄에 심은 농작물을 가을에 수확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였지만, 아이의 변덕스러운 흥미를 충족시키기엔 부족했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풍경마저 매해 별 다를 것이 없다 보니 아이는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그 당시 시골의 밤하늘엔 별이 참 많았다. 친구들과 신나게 숨바꼭질을 하다 집에 갈 때쯤이면 금세 사방이 어두워졌고, 거의 매일 밤 별을 보는 일이 그리 특별한 게 아니었다. 밤이 되면 마을에는 가로등 불빛 몇 개만이 길바닥을 비추고 있을 뿐, 별빛을 방해하는 어떠한 것도 없었다. 덕분에 학교에서 배운 여러 별자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도 오리온자리, 백조자리,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자리는 금방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건너편 마을에 골프장이 생기면서부터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야간 골프에 사용되는 불빛이 생각보다 강렬했고, 특히 밤에 골프장 주위로 산란되는 빛은 산 너머에 있는 마을까지 도달할 정도였다. 실제 그 무렵 9시 뉴스에는 빛공해와 관련된 뉴스 보도가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빛공해를 겪고 있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예전만큼 밤하늘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빛을 등지면 그나마 괜찮았지만, 한 번 물감이 칠해진 도화지는 더 이상 하얀색 도화지가 아니듯 전보다 맑은 하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나이가 들면서 하늘에 관심을 잃게 되는 것과 동시에 하늘이 주는 그 특별한 맛을 잃게 했다.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고등학생 이후로는 계속해서 도시에 살았다. 이제는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고 별이 보이는 것이 특별한 일이 되었다.

반응형

새벽 4시, 경상북도 영천의 보현산 자락에 위치한 천문대에서 아직도 관측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천문학자 전영범 박사다. 그가 휘향 찬란한 도시 불빛을 떠나 이곳 보현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목적은 오직 하나, 별을 보기 위해서였다. 일찍이 사진 기술을 배웠던 그는 1992년 보현산천문대 건설이 시작되면서 천체사진 관측 전문가로 합류했다. 그는 천문대가 준공되기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망원경인 1.8미터 광학망원경을 설치하고 세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망원경을 설치하는 제작사 측에서 정상적인 설치를 거부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는 태백산맥의 매서운 추위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를 포함한 연구진들은 직접 운영 시스템을 완성시켜야만 했고, 다행히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별 다른 문제 없이 잘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 덕에 그는 한국은행에서 1만 원권 지폐에 1.8미터 망원경 사진을 넣고 싶다고 했을 때, 자신 있게 국내에서 가장 큰 '우리 망원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밤샘 관측을 이어가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소행성 1개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소행성을 추적하다 더 많은 소행성을 찾았다. 그렇게 총 120개의 소행성을 발견했고 2002년 2월, 처음으로 소행성 하나에 고유번호를 받았다. 고유번호를 받으면 발견자가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 연구원 내 여러 논의 끝에 그는 같은 해 5월, 소행성 '보현산'으로 정식 승인을 받았다. '보현산'은 소행성 '통일' 이후 우리나라에서 이름을 붙인 두 번째 소행성이다. 후로 발견한 소행성에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분들의 이름을 연대순으로 소행성에 붙였다. 최무선, 이천, 장영실, 이순지, 허준, 김정호, 홍대용, 유방택, 이원철, 서호수 총 10명의 과학기술인 이름이 들어갔다. 비록 이제는 소행성 발견으로 이름을 붙이는 일이 큰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소행성을 발견한 때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소행성이 그를 천문대의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언론취재를 비롯 여러 방송에 출연했다.


별을 관측하는 일은 상당히 고된 일이다. 일반적으로 관측은 사계절 내내 이루어지지만, 온도 습도 등 날씨의 영향을 고려했을 때 가장 관측하기 좋을 때는 겨울이다. 밤이 가장 길고, 습도가 낮아 관측용 렌즈에 습기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겨울은 관측에는 좋지만, 관측자 입장에선 얼어 죽기 딱 좋은 계절이다. 관측자들은 산 정상의 낮은 온도와 칼바람을 견뎌가며 카메라를 세팅하고 그것을 밤새 관측하는데, 텐트와 침낭 그리고 핫팩에 의지해야만 한다. 반대로 여름에는 덥기도 덥지만 모기랑 싸워야 한다는 치명적인 어려움이 있다.

 

좋은 관측을 위해서는 관측자들이 카메라 주변을 지켜야 한다.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 법. 노출 중 날씨가 흐려져 관측이 제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야생동물이 카메라를 휩쓸고 갈 수도 있다. 느닷없이 카메라가 꺼져버리는 경우는 다반사다. 오죽하면 우리나라는 날씨 때문에 1년 중 거의 절반은 관측이 안 되고, 나머지 절반도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라고 할까. 아쉽게도 천체 관측은 좋은 위치에 카메라 세팅만 해놓고 집에서 푹 쉬고 다음날 아침에 카메라를 다시 찾으러 갈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질 않는다. 차에는 항상 삼각대를, 가방에는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하늘길이 열리면 언제든 관측을 시도한다. 영하로 떨어지는 추운 겨울에도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면서 관측을 하는 이유. 푹푹 찌는 여름밤, 높은 지대에 있는 카메라 설치장소까지 수 없이 오르내린 탓에 온몸이 땀으로 덮여도 관측을 하는 이유. 전영범 박사가 천체 관측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관측을 하는 게 재밌기 때문이다.

천체관측은 언제나 즐겁다. 관측할 일이 있으면 늘 마다하지 않고 나선다. 그런데 들뜬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해도 제대로 관측하기는 참 어렵다.
- 전영범(저자)

전영범 박사님은 자기의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긴다. 천체 관측이 얼마나 즐거운지,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이 '즐겁다'는 표현일 정도다. 마치 물아일체의 경지라고 할까? 그는 천체 관측을 즐기다 그것이 일이 되고, 이제는 인생이 되어버린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직장에 종사하며 누구나 한 번은 고민해 봤을 것이다. 상사에게 들었던 요구 중 가장 난해했던 것 중 하나가 '업무를 즐겨라'는 것이었다. 때로는 힘든 업무를 강제로라도 즐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다른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지점, 주어진 업무와 자신의 흥미 사이의 대척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가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다. 직장 생활 속에서 깨닫게 되는 사실 중 하나는 사람들이 결국 자신이 즐겁게 느끼는 일을 찾게 되며 그에 힘쓰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기 인생 대부분을 천체 관측을 하며 보낼 수 있는 건 일반적인 삶의 태도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이토록 한 가지 일을 오랜 기간 하기 위해서는 일을 성취하려는 직업적인 태도, 이를테면 투철한 직업정신이 필요하다. 또한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직업적인 의무를 이행하는 데 강한 의지와 열정을 투여해야 한다. 이것은 업무적 성취를 넘어 삶의 태도로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직업적인 의무를 다하기 위한 태도는 중요하지만, 더욱 가치 있는 것은 내면에서 오는 만족과 행복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햇수로 5년째에 접어들었음에도 나는 아직까지 나의 능력에 대한 확신과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매일매일 고민한다. 하지만 매일의 시도에도 명확한 답을 내려본 적은 없다. 직업이 우선일까? 능력이 우선일까? 일이 우선일까? 아니면 모든 건 삶의 태도에 달려있는 것일까? 문득 평생 별을 관측해 온 전영범 박사님이 새삼 존경스럽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울까? 나도 별 하나에 즐거울 수 있다면. 책 <천문대의 시간 천문학자의 하늘>을 추천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