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못하는 건 없다는 믿음이 세상에 팽배해지면서, 이제 세상은 시간마저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돈보다 먼저 흐르고, 책임보다 더 깊게 흘러간다. 문제는, 그런 깨달음이 늘 뒤늦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공사판이든, 인생이든.
- 본문 중에서
계획은 늘 어긋났지만, 사람 덕분에 끝까지 완성된 현장의 기록
건설 현장 이면에 펼쳐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묵직한 질문들
<도면 밖의 이야기>

차례
- 1부 기초가 아니라 시간을 묻어 버린 건에 대하여
- 낭만에 10억 원 정도는 쓸 수 있잖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데, 어쩔 수 있나!
어깨춤을 계속 추면 정말 어깨 빠진다
이거 돈 다시 빼시겠어요? 아님 묻고 더블로 가시겠어요? - 2부 콘크리트 양생의 침묵 속에서
- 목욕탕에서 보면 사람 다 똑같아 보이더라
된장찌개에서 된장이 빠지면 안 되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모르겠고 - 3부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제가 파티장입니다만, 공략은 없습니다
너, 나의 동료가 돼라 오쿠상!
검은 머리 파뿌리 되지 않는 방법에 대하여
감자칩이 질소 과자로 불리지 않기를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 줄 알았습니다 - 4부 공사 끝난 줄 알았지? 이제 시작이야
- 대부님, 그게 아니라 명분이 없다 아입니까
현장은 코미디가 아니라 드라마로
그렇게 하실 거면, 그냥 집에 있으시던가요
누가 너를 불쾌하게 했다면, 복수하려 들지 말아라 강가에 앉아 있으면 곧 그의 시체가 떠내려 가는 것을 보리라
그대, 어찌하여 현장에 가지 않고 사무실로 오셨소
그거 내가 다 지은 거라니까는!
저자 소개
작가 박용준
발전 공기업에서 일한다. 일은 대체로 계획대로 잘 안되는데, 글은 계획보다는 잘 써지는 편. 거창한 포부는 없고,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것에 집중하는 데, 그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매일 실감하는 중. 그래도 그 덕분에 재미있는 상황에 자주 휘말린다. 에피소드는 많은데 말로 풀 재주가 없어서 글로 소화시키는 유형. 머릿속에 떠오르면 일단 쓰고 본다. 2024년 첫 책 『아빠 말보다, 엄마 말을 들어라』를 출판하여, 주변 아버지들의 원성을 자아냈다. 이번 책 『도면 밖의 이야기』는 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에세이로, 간단한 고찰과 사유를 제공하면서도 소소한 재미를 추구하고자 했다.
연락을 참 많이 받았다. 의외였다. 첫 번째 책을 출판했을 때와 달리,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비로 들어가는 SNS 홍보도 단 일회성에 그쳤는데, 어떻게들 알고 연락을 주셨던 걸까.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글의 퀄리티가 좋아졌다는 것 외에도, 애써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자는 일말의 기대나 호승심 따위는 일찍이 개나 줘버렸다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유일하게 사람들에게 드러낸 건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에 링크를 달아놓은 것뿐이었다. 그리고 추천사를 받기 위해 멋진 선배님께 도움을 받은 정도랄까. 그런데 웬걸. 백이면 백 혼자서 이것저것 시도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특히나 일부 선배님들은 ‘책은 사서 보는 것’이라며 내게 책을 받길 거부했고, 실제 책에 이름이 언급된 몇몇은 거마비를 주겠다며 내게 계좌번호를 요구하기도 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역시나, 나는 오늘도 결국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근황은 이쯤으로 하고, 책 내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풀고자 한다. 책에는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기명으로, 누군가는 무기명으로. 그걸 눈치챈 독자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를 묘사했다는 나의 주관적 시선을 핑계 삼아 꽤나 많은 이들을 소위 까내렸는데(?), 그들의 이름은 책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는 철저하게 계산된 바로, 앞으로 나의 인생에, 짧게는 회사생활에 어떠한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할 수밖에 없던 필수불가결한 조치였다.
그런데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나는 지금, 내가 심도 있게, 하지만 나름대로는 위트 있게, 한편으로는 매우 현실적이고 과격하게, 특정 사건의 범인이라고 묘사했던 주인공들의 일부와 같은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난날 원고에서 용의자의 이름을 지워야겠다는 나의 감각적 판단에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되었는데, 어쨌거나 그들과 한집살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 어떠한 여지도 남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바에 따라, 그들에게 나의 책 출판 소식을 철저히 극비로 숨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도 나는 지난날의 판단과 같이, 현명한 판단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한편, 한때는 부러웠던 이 대리님과 같은 사업지로 이동한 나는, 구미 본부장님이 과연 ‘괜찮은 사람이었는가?’에 대해 이동한 지 4개월이 지나서야 꽤나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는 가끔 떼쓰는 아이처럼 칭얼대기도, 가끔은 꼰대처럼 지적질을 일삼았지만, 일은 나름대로 잘했다. 업무적 감각만큼은 분명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은근히 귀여운 면도 있었다. 주 차장님이 들었으면 구역질이 난다고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면, ‘어떻게 판단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우리는 보통 판단의 기준이 없거나 모호할 경우에 즐겨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비교다. 그렇다면, 구미 본부장님과 누구를 비교했다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 나는 다시 한번 이쯤에서 누군가를 언급하는 일은 멈추는 게 맞다고 본다.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크흠.

마지막으로, 출판업계에 대한 짧은 소감을 남겨본다. 나는 금번 책 <도면 밖의 이야기>를 출판하기 위해 약 100개의 출판사에 투고를 했고, 3개 출판사로부터 출판제의를 받았다. 그중 얼토당토않은 계약조건을 들이민 두 곳을 과감하게 잘라내고, 행복우물 출판사를 선택했다. 대형 출판사는 아니었지만 나름 역사가 있었고, 표지 디자인을 뽑는 것이나 최근 출판하는 책들의 면면을 보니 나름 수준이 있어 보였다. 단순한 판단이었다. 또한, 작가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수준의 글에도 선뜻 함께 할 의사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두 곳에서 발생했다. 출판 전 그리고 출판 후.
출판 전, 책 표지 디자인을 두고 출판사와 사소한 갈등이 있었다. 출판사가 제안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략 서너 번의 메일이 오고 갔음에도, 여전히 디자인은 별로였다. 그래서 나는 결국 내가 베스트셀러에 있는 문형배 작가의 <호의에 대하여>를 ‘오마주’하자는 의견을 냈고, 수준 높은 디자이너의 호응 탓에 꽤나 괜찮은 디자인이 나왔다.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요구했고, 그것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고자 했다. 그런데 웬걸, 누가 보더라도 오마주한 디자인을 고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디자인이 날아왔다. 화가 났다. 다분한 의도가 느껴지는 일이었다. 이것은 선택강요였다. 더 이상 디자인 요구를 하지 말라는. 나는 풍기는 불순한 의도에 불쾌감과 모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출판사에 항의를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담당자는 내게 말했다. ”저도 작가님께 서운한 거 많아요. 한번 다 얘기해 볼까요? “ ”그러라고 통화한 거니까 해보시죠 “ 그러나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나와 담당자는 계약을 하던 날을 제외하고, 단 한 마디도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하도급사 부리듯이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 이번엔 내가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들과 어떠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을뿐더러, 하도급사 취급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애석하게도, 그와 내가 알고 있는 하도급사의 개념이 달랐던 모양이다. 부탁인데 내가 겪었던 하도급 사들은 당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을 잘하니, 제발 그들에 대한 모욕을 멈춰주길. 이해한다. 서로 경험이 다르니까. 그리고 나이차가 있으니까. 그럴 수밖에. 그때 나는 확신했다. 출판업계는 망하는 게 옳다고. 참,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디자인은 상대적인 거예요.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르잖아요” 그렇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그런 결과물을 내놓고도 잘했느니 못했느니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혹은 내릴 수 없는 업계의 분위기라면, 출판업계는 망하는 게 옳았다.
출판 후의 일은 비교적 최근에 있었다. 주말을 맞아 아내와 교보문고 대구점에 들렀을 때였다. 이미 책이 매대에서 내려갔을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들어맞았는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서가 한편에 꽂힌 내 책 옆에는 제목부터 의심스러운 책 한 권이 꽂혀있었다. <도면에 없는 사람들>. 저자는 소속을 알 수 없는 건설현장 근무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출판사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쪽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출판사였다. 책을 펼치니 의심은 점점 확신이 되었다. 그야말로 내 책과 상당히 ‘유사’했다. 특히나 프롤로그는 거의 빼다 박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한계는 분명했다. 저급한 짓을 했다는 걸 스스로 밝히듯, 내용은 허접하기 이를 데 없었고, 현장에서 벌어진 어떠한 구체적인 사건도 묘사하지 못했으며, 본인의 소속조차 밝히지 못하는 저렴한 글뿐이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불쾌감의 골짜기에 갇힌 채 나는 생각에 몰두했다. ‘언제 유출된 걸까?’
두 가지 정황이 의심스러웠다. 하나는 원고를 투고할 때 관련 있는 유력 용의자에게 투고를 했던가, 그렇지 않다면 원고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강렬한 의도에 의해 유출되었던가. 둘 다 가능성이 농후했다. 내가 모든 이들의 면면을 알지 못하니 투고든 뭐든 검토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누군가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었다. 내가 굳이 출판사와의 작은 갈등을 적극 밝힌 건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항의성 메일에 속이 상한 누군가가 충분히 의도적으로, 속된 말로 ‘x 먹어보라는 식’으로 유출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모두 추정의 영역이다. 나는 결코 이 일의 진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평생 동안. 또한, 51:49든 49:51이든, 이러한 사실에 어떠한 불쾌감을 느끼든 말든, 이 일에 대해 시정요구를 한다거나, 고소 혹은 고발조치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오마주’니까. 내가 요구했던 바로 그 오마주니까. 그것의 경계는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토록 칼로 물베듯 선을 그을 수 없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한 가지 결론을 내리는 게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출판업계는 망하는 게 옳았다. 출판업계는 분명 이런 짓을 앞으로도 꾸준히, 창작이라는 이름 아래 계속해서 허용할 것이라는, 나의 강한 미래지향적 추측을 이겨낼 만한 그 어떠한 참신한 방안이 나올 리 만무하다는, 나의 강한 믿음과 예측으로 판단하건대 이 업계는 망하는 게 옳았다. 뭐, 물론 지금도 충분히 망해가고 있지만.
짧은 소회를 밝히고자 했는데, 글의 목적이 바뀌지 않았을까 우려하면서도, 이만큼 사실적이고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기도 어려울 것 같아 나름의 만족감과 함께 글을 줄이고자 한다. 나는 앞으로도 업계가 망하는 것과 관계없이, 창작활동을 이어갈 것이다. 다만 내가 아직 실력이 부족하여 이 같은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조금 더 글을 잘 쓴다면,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면, 나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면, 내가 마주하는 여러 상황들이 달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판사에 참 감사하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원동력을 주었으니까. 덕분에 나는 더 성장할 것이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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